파이팅! 짱선생님

2005.03.21 11:30:00

매년 경험하는 일이지만, 학기초에는 눈코뜰사이 없이 바쁘다. 새로 학급을 맡아 낯선 얼굴들과 만난다는 설레임도 잠깐, 쏟아지는 업무와 각종 자료 준비로 하루해가 모자랄 지경이다.

우선 아이들의 인적사항을 파악하여 수첩에 일일이 기록한 후, 각종 통계 자료부터 만들어야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특기적성교육이나 EBS 교육방송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사안이기에 학생들의 선호도 조사와 함께 몇 차례 더 조정작업을 거친 후 담당 선생님께 넘긴다.

학급 임원을 선출하여 학급회를 조직하거나 청소 당번을 배정하는 일도 빠트릴 수 없고, 담당 교과의 수업 준비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처럼 일에 묻혀 지내다 보면 정작 아이들과의 상담은 커녕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도 혹간 발생한다. 그럴때면 괜한 짜증과 함께 의욕을 갖고 시작한 담임 역할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요즘은 담임교사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각종 현안이나 전달사항은 네트워크나 전자우편을 활용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근무중에도 컴퓨터를 켜놓고 메시지 도착 여부를 수시로 확인해야 실기(失期)하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출근과 함께 컴퓨터를 켜자 대기중인 전자우편 한 통이 눈에 띄었다. 발신인은 다름아닌 교감선생님이었다.

"3월 초에는 시간이 도무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쁘기만 합니다.
특히 학급 담임에겐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에 지치다보면 스트레스 쌓이고 짜증도 나잖아요.
하지만 참고 또 참으세요.
선생님에겐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의지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힘들어도 존재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번 주에는 틈나는대로 아이들과 마주하고 상담해주세요.
이름을 불러주고 내가 너에게 관심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말 잘 듣고, 인사 잘하고, 잘 생기고, 공부 잘 하는 아이도 있고
엉뚱한 짓, 미운 짓, 냉큼 정이 안가는 아이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
그래서 우리가 어루만지고 지켜주지 않으면 않되는 아이도 있을 겁니다.
모든 아이를 편애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해주세요.
그러면 선생님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짱이 되실 겁니다.
선생님들을 믿습니다. 파이팅! 짱선생님"

편지속에는 교감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의 말씀과 더불어 담임교사로서 잊지 말아야할 덕목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짧은 편지였지만 문구 하나하나에는 어떤 교육철학이나 사상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이 담겨있어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요 며칠 학년 초만 되면 나타나는 '피로증후군'으로 인해 무척 힘들었던 상황에서 교감 선생님의 편지는 그야말로 그간의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든든한 원군이었다. 행복한 감정이 밀려드는 순간, 마음속에서 '그래 교감선생님이 담임교사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담임교사가 망망대해에 떠있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등대가 되어준다면 아이들은 더욱 감동할 것이고 용기를 얻을 것이 분명하다'는 믿음의 싹이 터오기 시작했다.

잠시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교감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보낸 후, 창밖에 펼쳐진 풍경속으로 시선을 옮겨 보았다. 한결 높아진 기온 탓인지 수목의 거친 피부 사이로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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