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학교를 찾은 스승님

2005.06.07 10:19:00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매년 이맘때면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진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세미나가 개최된다. 대도시와는 달리 지방의 중소도시에 위치한 학교로서 늘 정보 부족을 실감하고 있는 처지라 진학세미나는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리고 강연에 나서는 분들의 면목을 살펴보면 이 세미나가 얼마나 유익한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대개는 수학능력시험 출제에 간여했던 교수님이나 탁월한 분석력과 식견을 갖춘 입시전문가를 초빙한다. 물론 이렇게 유능한 분들을 모시려면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만, 이 문제는 행사를 주최하는 서산장학재단측에서 모두 부담하고 있다.

서산장학재단은 이곳 서산 출신으로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대아건설 성완종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여 설립한 비영리 법인단체다. 주로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품행이 바른 학생을 학교별로 추천받아 학자금을 지원하는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재단측은 능력이 뛰어난 학생을 조기에 선발하여 대학을 마칠 때까지 학비를 전액지원하고 있다. 게다가 매년 고3 학생들의 진학을 돕기위해 세미나까지 열어주니 지역 교육계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세미나에 초대된 연사는 두 분이었다. 입시 전문가로 활동중인 대성학원 이영덕 실장님과 2005학년도 수능시험 출제위원장을 지내신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노명완 교수님이다. 재단측에서 준비한 책자를 살펴보니 두 분께서는 오전에 다른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곧바로 리포터의 학교로 이동하는 무척 바쁜 일정이었다.

드디어 세미나 개최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13번째 열리는 세미나지만 예년과는 달리 무척 긴장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연사로 초빙된 노명완 교수님은 리포터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학생시절의 은사님인 것이다. 기억속에 남아있는 교수님은 엄격하고 치밀한 강의로 명성이 자자했다. 인색한 학점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카리스마로 수업을 장악하시는 교수님의 탁월한 능력은 많은 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것은 가시밭길처럼 험란했지만 일단 마치고 나면 그간의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얻는 것이 많아, 늘 수강생들로 차고 넘쳤다. 한마디로 교수님은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교수님께서 도착하셨다는 연락이왔다. 강연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는지라 재단측 인사와 함께 교장실에서 환담을 나누고 계신다는 전갈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서둘러 교장실로 행했다. 노크를 하고 교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대번 제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잡아주신 교수님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늘어난 흰 머리칼만이 세월의 흐름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간단히 안부를 묻고 교장실을 나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체육관으로 행했다. 먼저 교장선생님께서 교수님의 간단한 이력을 소개하고, 이어서 강연이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강단에서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하나 하나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자 아이들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교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교수님의 강연을 듣다보니 어느덧 정해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들고 연단으로 향했다. 비록 서산장학재단측의 초청이기는 했지만 제자의 학교에서 그 제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 소중한 말씀을 해주셨으니 이 보다 더 큰 고마움이 어디 있겠는가?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라고 쓴 리본이 부착된 꽃다발을 교수님께 드리는 순간 아이들도 감동했는지 오랫동안 박수로서 화답했다.

체육관을 떠나면서도 제자가 준 꽃다발이 그렇게 소중했던지 가슴에 꼭 안은 채 연신 미소를 잃지 않던 교수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교수님, 제자의 학교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최진규 교사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