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香이 그리운 시대

2005.06.09 13:57:00


얼마전, 서울에 출장갈 일이 있어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었다. 모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는 책을 읽기로 했다. 그러나 기대는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쪽 저쪽에서 들려오는 휴대폰 벨소리와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큰소리로 통화하는 승객들 때문에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상황은 지하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년전만 해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승객들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있었다. 특히 촌음(寸陰)을 아껴써야 할 젊은이들마저 문자메시지를 작성하거나 음악을 듣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휴대폰이 독서문화를 잠식해 버린 듯 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에 힘입어 휴대폰이 생활필수품처럼 취급되고 있는 마당에 독서를 강조하는 것이 어쩌면 고루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해도 책속에 담긴 소중한 가치만큼은 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책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지식의 저장고이자 정서 함양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가 한국출판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1인당 월평균 1.6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달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사람이 무려 43.6%에 달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책과 무관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여가 시간이 생기면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성인 중 29.3%가 텔레비전 시청으로 시간을 보내며 책 읽는 성인의 비율은 13.8%에 불과했고, 중·고생은 53.5%가 여가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보낸다고 답했으며 독서를 하는 비율은 고작 10.5%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책을 외면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국가경쟁력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이땅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소년들이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영상매체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실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식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지식의 보고인 책의 중요성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독서의 생활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책읽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책은 꺼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버스나 지하철 내의 환경이 마음놓고 독서할 수 있을 만큼 관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의 발전을 이룩한 것도 따지고보면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만원버스와 지하철 내에서의 온갖 불편도 감수하며 손에서 책을 놓지않고 지식을 쌓았던 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찍이 이당 안병욱 선생께서는 '책 읽는 민족은 번영하고, 책 읽는 국민은 발전한다'라며 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지당한 말씀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가간의 경쟁에서 독서는 문화, 정보, 지식의 바탕일 뿐만 아니라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런만큼 선진국치고 책을 멀리하는 나라가 없다. 말하자면 독서는 선진국의 상징인 것이다. 선진국이 되는 길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생활에서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 할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까지도 아껴가며 책을 읽던 그 옛날의 독서香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진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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