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랑하면 된다

2005.06.16 16:32:00

우리 반의 한 아이가 내 홈페이지의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선생님 저 리라입니다. 종종 남자 친구들과 싸워요. 선생님, 집에 가면 하는 얘기가 친구들과 싸웠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숙제 좀 조금만 내주세요. 학원 숙제에 학교 숙제에 잠 잘 시간이 없어요. 하드도 사주세요. 요즘 덥고, 짜증나고, 화나고, 불쾌지수 올라가 친구들에게 화풀이하거든요. 그리고요. 선생님 힘내세요. 아이들이 그러는데 선생님은 좋으신 분이래요. 저도 이젠 그렇게 생각하고요. 참 편안하신 선생님 같아요."

커서 더 잘 보이는 리라에게 내가 쓴 답장이다.

"리라가 남자 친구들과 말싸움 하는 것 선생님도 자주 본단다. 하지만 싸움의 내용이 흔히 말하는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을 실감하는 수준이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하하 호호’ 즐거워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모르는 척 지나친단다.

리라야, 사실 선생님은 너희들이 학원 숙제에 시달려 학교 숙제는 조금 내고 있단다. 그래서 학부모님들을 만나면 숙제 좀 많이 내달라는 얘기를 종종 듣고 있지. 올해도 우리 반 부모님들에게 숙제 얘기 여러 번 들었단다. 그러니 어쩌면 좋겠니?

너희들이 하드 사달라고 애원하니 마음 약한 선생님이 소원을 들어줘야겠지. 하지만 올해 너희들을 만나 하드를 세 번 사줬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덥고, 짜증나고, 화나고, 불쾌지수 올라갈수록 참는 것을 배우는 게 교육이라는 것도 잊지 말거라.

이왕이면 밝은 얼굴로 즐겁게 지내는 것이 더 유익하고 보람 있겠지. 남자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자. 참 선생님을 좋은 사람으로 평가해줘 고맙구나. 앞으로도 학교나 너희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종종 알려주기 바란다."

아이들의 일반적인 일상과 생각이 담겨 있는 글을 읽고, 또한 답장을 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바라는 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먼 훗날 나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아이들이나 같이 근무했던 직장 동료들에게 진짜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그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최소한 직장 동료들에게라도 신망 받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욕심을 버리고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히 뭐랄 것도 없지만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게 쉬운 일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교육자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기에 사랑으로 감싸면서 살아야 한다. 어쩌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런 운명을 타고났을 것이다. 교육이 왜 어려운가? 교사가 왜 남달라야 하는가?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 '먼저 사랑하면 된다.'를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