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16일)에 방학식을 하고 난 뒤 18일부터 3주간의 보충수업이 실시되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되는 무더위에 모두가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본교에서는 지난 주 부장회의를 거쳐 이번 여름방학 수준별 보충학습 기간 동안 3학년 교실부터 에어컨을 설치해 주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사실을 방학식때 하지 않고 보충학습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에 이야기해 줄 요량이었다.
월요일 아침 1교시. 교실로 들어서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와 닿았다. 교실 창문 모두를 활짝 열어 놓았으나 워낙 무더운 날씨라 소용이 없었다. 밖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바로 그때였다. 한 여학생이 참다못해 한 마디 하였다.
“선생님, 더워서 도저히 안되겠어요.”
나는 불만을 토로하는 그 여학생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수업에만 열중하였다. 그리고 아이들 모르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에어컨 설치 건에 대해 이야기해 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특히 창문 가에 앉아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얼굴은 더위에 지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1분단, 모두 일어 서. 그리고 책상을 옆으로 옮겨.”
아이들은 내 말에 어안이 벙벙하여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남학생이 책상을 옮기면서 말을 했다.
“선생님, 이렇게 해도 소용이 없어요. 더위에는 장사가 없어요.”
“OO아, 특히 네 자리 주위는 공간을 많이 비워두어야 해. 알았지?”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공간을 비워두라니요?”
“그럴 일이 있단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교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큰 박스상자가 하나 둘씩 교실 앞에 놓여지자 눈치가 빠른 한 아이가 괴성을 질렀다.
“얘들아, 에어컨이다. 에어컨이야.”
그 소리에 아이들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 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아이들은 신기한 물건을 처음으로 대하듯 뜯지도 않은 에어컨 박스를 만지기도 하고 하물며 입맞춤까지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에 3주간의 보충학습을 아이들이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다. 매일 덥다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밤 열한 시까지 자리에 앉아 자율학습을 해온 아이들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이 에어컨의 바람 만큼이나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에어컨 설치 건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한 학교 관계자의 이번 결정은 정말이지 잘한 일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