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2005.08.10 09:18:00


흘러들 수는 있어도 흘러 내려갈 수 없어 그저 괴어 있기만 하던 물웅덩이! 처음부터 물속 생물의 활력 넘치는 하모니는 없었지만 지금은 탁하다 못해 어둠만이 존재하는 물웅덩이! 누군가가 물이 흘러 내려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영영 그 어떤 생물도 존재할 수 없는 물이 될 수밖에 없을 물웅덩이!

‘딸기혈관종’과 ‘하지정맥류’라는 희귀성 난치병을 태어나면서부터 숙명처럼 안고 8년을 살아 온 은비, 스치기만 해도 출혈되고 잘 지혈되지 않아 또래들과 잘 놀 수도 없고 항상 책가방 속에는 두세 벌의 여벌 옷을 넣고 다닌 은비!

두 명의 언니와 함께 외할머니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홀로 된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집을 나가서 세 자매와 일 주일에 한 번 정도만 만난다. 핏자국으로 얼룩진 옷이며 이불을 세탁하기에도 힘든 77세 된 할머니지만 극진한 사랑으로 은비를 거두어 주신다. 그러나 출혈의 고통 때문에 밝은 미소가 일그러지며 울상을 짓는 은비를 볼 때마다 할머니의 가슴은 무거운 짓눌림으로 말조차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엄마의 마음이야 어떠했을까!

이제 막혔던 물길이 트이려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의 힘이 단단하게 막혀 있던 물길을 뚫고 있다. 곧 그 검은 물들이 흘러 내려가려 한다. 이제 생명수 같은 새물이 흘러 들려고 한다. 투명하고 하얀 물보라를 이루는 깨끗한 물줄기가 ‘졸졸’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흘러들게 될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은비에게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흔히들 우리 사회를 인정이 메마르고, 나만 잘살면 되고, 남의 어려움을 못 본 채 고개를 돌리는 이기주의의 극치를 이룬다고 단정짓기도 한다. TV 드라마 주인공들의 가슴 아픈 사랑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는 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화려한 축제장터에서 기어 다니며 구걸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은 눈에 띠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50여 분 짧은 시간 동안에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서 천 원짜리 전화 한 통화씩으로 수천만 원을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사람들도 있다. 아직은 아름다운 사회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훨씬 더 많다.

이제 은비는 큰 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 기간이 많이 걸리지만 물리치료와 레이저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한다.

은비의 시냇물은 온갖 생명의 낙원이 될 것이다. 맑고 깨끗하고 ‘졸졸’ 경쾌한 여울 소리 들리는 흐르는 물이 될 것이다.

‘은비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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