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국을 오고간 하루

2005.08.24 19:22:00

어젯밤 좋지 않은 꿈을 꾼 탓일까? 아침부터 감정지수가 낮아 있었다. 혹시라도 이 감정이 아이들에게 영향이 미칠까봐 마음을 진정시켰다. 예전의 경우를 비추어보건대 이런 날은 꼭 이상한 일이 생기곤 하였다. 그래서 행동 하나 하나에 각별한 신경을 쓰기로 하였다.

1교시 수업시간.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수업을 시작하였다. 평소와 다른 내 얼굴 표정에 아이들은 숨죽이며 내 눈치만 살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담임인 내 얼굴 표정만 보고도 그 날의 내 기분을 알아채는 것 같았다.

나의 지나친 감정이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생각에 할 수없이 어젯밤에 꾼 꿈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얘들아, 사실은 어젯밤에 꾼 꿈 때문에 그렇단다.”

수업도중 느닷없이 꿈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은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 호기심이 발동한 한 아이가 꿈 내용을 물었다.

“선생님,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이야기해 주세요.”

아침에 꿈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다는 말을 무시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젯밤 꿈속에 수시 모집에 지원한 모든 아이들이 떨어져 교실이 울음바다가 되었단다. 그리고 너희들을 달래느냐고 얼마나 혼줄이 났는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합격자 발표가 오늘인 한 아이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아이는 K대학에 소신 지원한 학생으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생님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 아이였다.

“선생님, 꿈은 반대잖아요? 그리고 오늘 OO대학 발표 날인데 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기대하세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구나.”

나는 그 아이의 말에 힘없이 대답을 하고 난 뒤 수업을 진행하였다.

합격자 발표시간인 오후 4시까지의 시간은 정말이지 마의 시간과도 같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으나 허사였다. 발표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 특히 수험생의 마음은 오죽 하겠는가?

오후 4시. 조심스레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리고 합격자 확인 창을 열고 수험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빈칸에 타자하였다. 긴장을 한 탓일까? 좌판 위로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는 내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확인 버튼만 누르면 된다. 찰나의 순간에 여러 생각들이 교차되기도 하였다.

마침내 확인 버튼에 마우스를 대고 클릭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른 글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합격’이라는 글자만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합격이었다. 그 순간 부지불식중에 큰 소리로 “합격이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조용했던 교무실 분위기가 나로 인해 어수선해지는 순간이었다.

내 말이 떨어지자 교무실에 있던 모든 선생들의 축하의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양 담임인 내가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힘들어도 고3 담임을 해야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소식을 듣고 교무실로 온 아이를 꼭 껴안아 주면서 말을 했다.

“OO야, 축하한다. 꿈은 반대가 맞는 것 같애. 드디어 해냈구나.”
“선생님, 감사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지옥과 천국을 오고간 하루였지만 이건 분명히 선생님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임에 분명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일을 경험해야 될 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감수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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