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정지로 자부하는 D일보의 사설이 너무 깊이 없는 논조를 전개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 D일보의 논지는 교원평가 실시를 교원단체만 한사코 반대하고 있으며 이제 반대의 명분이 없으니 교사의 수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원 5만8000명을 증원해달라는 억지 카드를 꺼내고 있다. 이는 우리 전체 교원의 15%로 연간 1조 5000억의 예산이 필요하고 교대의 졸업인원으로 보아 무리하고
비현실적인 요구다.
앞으로 10년 후면 초등학생이 지금의 3분의 2로 줄어 '교원 과잉'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에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편협한 집단이기주의다. 9월에 시범실시를 못하면 영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교원단체가 불가능한 요구를 걸고 협상을 고의로 지연시키려는 저의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교육부가 교원 능력 개발의 자료로만 활용한다는 교원평가, 국민 대다수가 원하고 선진국 대부분이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으니 교원단체는 받아들이라는 내용이다.
D일보는 교원의 평가가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이제 정년이 일년도 남지 않았기에 한 번 임용되면 정년까지 보장되는 철밥통이 떨어질까 하는 걱정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과연 교원평가를 한다고 공교육이 일어서고 교원의 능력이 개발될까하는 걱정에 하는 말이다. 누가 뭐라 해도 교육의 마지막 책임자는 현장의 교사이다. 그래서 교사의 질을 올려야 공교육이 산다는 지론도 맞다. 그러나 교원의 질을 올리는 일이 교원평가뿐일까?
우리가 말하는 교육이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며 교사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교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가? 항간의 주장대로 능률적이고 최첨단의 능력을 가진 경제논리에 맞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공교육도 지금의 사교육처럼 바뀌어야 하고 교사들도 학원강사처럼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면 교사평가도 좀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게 가르치는가에
초점을 맞춘 평가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가 성적에만 매달려 산다면 아이들의 지적 수준은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이웃을 배려할 줄 알고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염려할 줄 아는 창조적이고 가슴이
따뜻한 인간다운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나라가 정한 우리의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전자보다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으며, 속셈은 아닐지 모르지만 학부모들도 표면적으로는 후자를 주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자를 진정한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면 지금처럼 교육을 경제논리에 얽매이게 만드는 입
시제도와 능률 제일주의적인 정책부터 개선해야 하며 학교에 대한 신뢰와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회복될 수 있는 방편을 찾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물론 존경과 신뢰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존경과 신뢰를 위해서 부단한 노력과 각고의 연찬이 뒤따라야 할 부류의 제일선에 교사가 서있는 것도 알고 현실적으로 전체의 교사가 다 존경받고 신뢰받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정부나 언론, 이상론만 주장하고 있는 일부 학부모단체들의 의도적인 교사 폄하행위는
결코 교육을 살리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교사 능력 향상에 대한 당국의 지원이 부족함을 질타하고 날아오는 화살에 방패가 되어 교원 스스로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기회를 주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교원평가를 국민들 대다수가 원한다는 식의 압박으로 교사들에게 평가를 강요하고 있는데 그 대
다수의 국민들이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조상 대대로 군사부일체라는 전통의 인식에서 항상 어렵게 느껴지든 교사를 평가하게 해주겠다는 데 사양할 국민은 또 얼마나 될 것이며 그것을 국민의 뜻이라고 밀어붙이는 교원평가가 정말 공교육을 살리고 교사의 능력을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신문을 보는 독자가 신문의 수요자이니 독자들에게 신문기자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자평
가제를 실시해서 기자들의 능력 개발의 자료로 삼겠다 하고 국민들에게 물어 보면 기자들의 고유 영역은 그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사양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 것이며 마찬가지로 교육부 관료들을 교사들과 국민들에게 평가시켜 관료들의 능력을 개발하는 자료로 삼겠다고하면 사양할 국민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인건비를 이유로 기자들의 수를 줄이고 한 사람이 몇 가지 분야를 맡아 취재하기
를 요구하기에 때로는 부정확한 기사를 써 욕을 먹기도 하는 기자들이 기자의 양심을 건 기사작성을 두고 비전문가 및 경영자의 평가를 거부하며 꼭 평가를 하겠다면 모두가 양심적이고 바르게 기사 작성을 할 수 있도록 기자의 수를 늘여달라고 요구를 했다면, 거기다 새로운 영상미디어의 발달로 향후 10년 정도에 신문의 발행부수가 지금의 3분의 2로 줄어 '기자 과잉'의 대란이 예측되는 사항이라면 기자들은 우리를 평가하겠다는 일반 독자들의 수가 많으니, 또 앞으로 기자의 수요가 줄어들 것이니 지금 비록 힘들어 양심적이고 정확한 기사작성에 무리가 있지만 조건 달지 말고 평가를 받자. 거기다 회사는 평가 결과를 기자의 능력 개발을 위한 자료로 삼는다고 하지 않는가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 회사의 사원 평가로도 충분히 기자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항변하지 않을까?
수요자가 원하지 않아도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이 생기는 것이 교육인데 이런 식의 지지를 교육을
위한 국민의 지지라 호도하며 교사집단을 압박하는데 앞장을 서는 언론이 있다니 아쉽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며 자식을 키우고 정부를 비롯해 소위 공익을 표방한 모든 공급자가 수요자의 평가를 받아가며 그 공익사업을 수행해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진정한 교육의 결과를 평가하려면 얼마만한 시간이 지나야 되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교원평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델인 미국이나 일본 등 소위 말하는 선진국의 경우를 보아도
학부모와 학생의 평가를 받는 교사가 국어나 수학의 질은 다소 올렸는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사회
를 창조하기 위한 인간다운 인간을 양성하는 데는 아무런 힘이 없는 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소식은 각종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된다. 오히려 더불어 사는 인간, 제 몫을 아는 인간을 키운다면 그는 스스로 지식의 습득에 매진하여 원하는 바를 초과 달성할 것이다.
교원평가의 결과가 단지 교원의 능력개발 자료로만 쓰인다면 차라리 평가에 드는 많은 돈과 시
간, 인력을 교사의 능력개발에 직접적으로 과감하게 투자하라. 그러면 스스로 능력 향상을 위해 새로운 각오들을 다짐하는 젊은 교사들의 노력과 맞물려 괄목할만한 성과가 있을 것이다. 교원평가는 지금의 제도 하에서도 그 제도나 방법을 조금만 손질하면 교육의 질과 교사의 질을 높이는데 충분할 것이다. 정말 새로운 교원평가가 필요한가는 그 후에 논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