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속삭임

2005.10.17 16:18:00


수액을 조절하며 힘들게 일해 온 뿌리를 쉬게 하는 나무들의 이별 의식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그토록 많은 잎새들을 매달더니 이제는 보낼 준비를 하고 서 있는 나무들의 겨울 준비는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 앞선 것 같다.

자연의 시계는 참으로 정확함을 나무는 잘 알고 있나보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사는 방법을 잘 터득하고 있음을 말없이 보여준다. 세상을 사는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공격적인 방법과 수비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으리라.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방법을 전자라고 한다면, 상황 파악이 늦어서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후자라 할 수 있다.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나무만큼만 가질 수 있다면 사람들 세상에 난무하는 시행착오를 훨씬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도 가을 탓인가 보다. 어느 한철에 열매를 많이 매단 감나무는 다음 해에는 열매 맺기를 스스로 자제함을 본다.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으려는 나무의 생존 전략이다.

금년에 우리 분교에서는 오래된 도토리나무를 힘들게 보내야 했다. 학교의 역사만큼이나 긴 나무를 보내기 위해 몇 달간 고심을 했고 살릴 방법을 찾았으나 워낙 많은 경비가 드는 일이고 2년 전부터 돌아갈 준비를 하며 새싹을 많이 내놓지 않던 나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 아무런 사심없이 자신의 길을 예비하던 나무의 말없는 가르침을 보며 마음마저 숙연하게 했던 할아버지 도토리나무가 남긴 밑둥을 보는 일이 서러웠는데, 이제는 욕심을 벗어버린 채 키 큰 코스모스 사이에서 시원스레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의 뒷모습이 깔끔해서 보기 좋다.

아픈 몸으로 그 많은 잎새들을 품고 살았던 지난 여름이 얼마나 아팠을까? 좀더 살리려고 인공적으로 주사을 주고 약을 투여하지 않고 편히 쉬게 해준 아픈 선택을 미안해 하지 않기로 했다. 큰 바위 곁에 심어져서 더 이상 뿌리를 펼 수 없어 삶을 접은 그의 선택을 받아주기로 했다. 때로는 거슬러 오르는 일이, 운명을 거역하는 일이 더 아름답지 않으니 받아 들이는 순종도 미덕이라고 내게 속삭이는 나무의 귀엣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큰 나무는 그가 지닌 오랜 추억때문에 마치 사람처럼 그리움을 남긴다. 봄이면 파릇한 싹을 틔우며 아이들의 등교를 반기던 우람한 허리, 여름이면 그 큰 그늘 아래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점심을 먹던 여름 한낮의 추억, 가을이면 고운 잎을 자랑하며 도토리를 탐하며 오르내리던 다람쥐를 품어주었고 겨울이면 빈 가지로 서서 무욕의 시간을 자랑하던 여유로움이 아름다웠던 할아버지 나무는 이제 내 마음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나도 저 나무처럼 돌아갈 시간을 재고 서 있는 이 가을. 아이들과 함께 살며 행복하고 마음아파 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나무만큼이나 그리운 시간을 남길 수 있는 지 자신이 없다. 나의 나무에 잎새로 만나 졸업을 한 아이들과 처음 담임해 본 1, 2학년 꼬마들이 주던 순결한 웃음과 사랑은 내 나무에 영양제 주사를 놓아주어 몇 년은 더 씩씩하게 푸른 잎새를 달게 해 줄 것 같다. 이 가을엔 더도 덜도 말고 나무만큼만 살 수 있기를!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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