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행복 찾기

2005.10.25 09:18:00

점심을 먹은 후에는 늘 급식실에서 교무실로 발길을 옮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다. 물론 교무실 청소를 맡고 있는 옆 반 아이들이 타준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교무실 문을 들어서면 옆 반 아이들은 서로 커피를 타주겠다고 투정을 부린다.

옆 반 아이들은 동학년 수업도 자주하고, 현장학습도 같이 다니는 선생님이 매일 점심시간에 커피를 마시는 것을 청소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내게 커피를 타줬으리라. 그게 이 아이들이 교무실 청소를 시작한 2학기 들어서였다.

내가 시킨 일도 아닌데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운가? 하지만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여러 번 못하게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심을 부지런히 먹고 아이들보다 먼저 교무실에 가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늦기라도 하는 날은 커피를 타놓고 기다린다. 점심시간에 교무실에 들르지 못하는 날은 싸늘하게 식어 있는 커피 잔이 내 자리를 지킨다.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이 비교육적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이 하는 일이 좋은 일임을 스스로 알게 한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이 아이들에게 옛 어른들이 했던 밥상머리 교육을 시킨다. ‘집에서 어른들에게 한 번이라도 커피를 타준 일이 있는가?’를 물으며 내게 커피를 타주는 것보다 집안 어른들에게 더 효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가르친다.

오늘도 여느날과 같이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교실로 갔다. 그런데 아이들 몇 명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연인즉 돈 만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가방에 넣어뒀는데 점심을 먹고 오니 빈 지갑만 책상 위에 올려 있더라는 것이다.

아뿔싸, 이 일을 어쩌란 말인가? 돈을 분실한 아이의 말은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까지는 분명히 돈이 있었단다. 그렇다면 돈이 분실된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급식실에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해결사가 돼야 할 담임으로서는 난감한 일 아닌가?

학기 초에 아이들에게 양심을 파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돈은 꼭 주머니에 넣고 다니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돈이 가방에 있었고, 어느 반의 누군가 손을 댔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럴 때 무슨 근거라도 나타나 해결될 수만 있다면 앓던 이 빠진 듯 시원할 텐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 근거도 없는 일을 아이들이 모두 알아봤자 좋을 것도 없었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잘못하면 죄 없는 아이들에게 상처만 입힐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른 척 방관할 수도 없지 않은가? 진퇴양난의 오후를 진정시키고 내일 차분하게 도난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까지 되짚어보기로 했다.

사람 사는 일이 어디 쉬운가? 교사는 어느 한순간 마음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그래도 착한 일을 하거나 가끔은 말썽도 부리는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으니, 그 아이들의 본바탕이 순수하고 깨끗하니 행복하지 않은가. 어쩌면 그래서 교사의 행복 찾기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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