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바람이 일고 있다. 광풍노도처럼 대지를 쓸어버릴지, 떠도는 낙엽을 휘감으며 소리없이 스러질는지, 그 전망이 불투명한 채 회오리바람은 우리의 심연(心淵)에 파문을 던지며 떠돌고 있다.」
윗글은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도올 김용옥 순천대 석좌교수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이 땅의 스승들이여, 들으시오! 교권은 존엄, 평가대상 될 수 없다'의 서문이다. 글을 읽어보면 교원평가로 교육부와 교원단체가 대립하며 그늘지고 있는 교육현장을 도올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또 걱정하고 있다.
「난 요즈음 세간(世間)의 모든 쇄사에 침묵으로 일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말이 들릴 리도 없고, 들릴 수도 없고, 들려야 할 까닭도 없는 세태가 스스로의 관성에 의하여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쇄사에 대한 잡언(雜言)이 대간(大幹)을 휘어잡을 까닭이 없으니 나 도올은 방관 속에 흘러가는 역사를 방치할 뿐이다. - 중략 - 그러나 '교원평가제'라는 이 한마디에 대해서만은 나는 침묵을 지킬 수가 없었다.」
세간의 모든 쇄사에 침묵으로 일관하고자 노력하고, 방관 속에 흘러가는 역사를 방치해야 할 만큼 관성에 의해 굴러가는 세태에 도올이 침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도올은「유교윤리(Confucian ethics)야말로 아시아적 자본주의 성취의 핵을 이루는 정신가치라는 것이다. - 중략 - 그 유교윤리의 핵심에는 바로 '교권의 존엄성'(the Dignity of Teacher's Right)이 자리잡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단언컨대 교원평가제란 넌센스요, 어불성설이요, 망국의 근원이다. 그것은 관료주의의 안일한 타성이 빚어낸 소치일 뿐이며, 일고의 가치조차도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교원평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첫째, 교사라는 인격체는 수량적·계량적 기준으로 평가될 수도 없고, 평가되어서도 안 된다.
둘째, 교원평가는 결국 교육의 장에 불필요한 잡음과 불신과 교육적 열의나 신바람의 냉각만을 초래할 것이다.
셋째, 교원평가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숙지해야 한다.
넷째, 훌륭한 부모일수록 학교교육의 자율적 특성을 신뢰하며,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훌륭한 부모들이야말로 침묵하는 대중이다.
다섯째, 우려했던 중고등교육의 부정한 실태는 교육제도의 문제이지 교원의 내면적 도덕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여섯째,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문제는 지나친 대학의 서열화와 사회진출의 학벌패거리의식 때문이다.
일곱째, 교원평가가 교원의 자질을 향상시키지 않는다.
여덟째, 우리사회는 지금 많은 좌절이나 인기 없어 보이는 정치판세의 엎치락뒤치락 속에서도 꾸준히 합리성의 증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도올의 글은 「내가 학생에게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비굴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면 차라리 나는 가르치기를 포기하거나 죽음을 택할 것이다. 물론 교사들에게는 나와 같은 선택의 여지가 주어져 있지를 않다. - 중략 - 나는 획일적 잣대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 중략 - 이제 우리 스승들! 이 땅의 40만 교사들은 일치단결하여 교원평가라는 저질적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 우리 스승들의 인권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것은 스승들의 삶의 이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백년대계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외친다. 유교적 가치의 핵심은 교권의 존엄이요 지엄이다.」라는 교권 얘기로 끝을 맺는다.
도올이 한 얘기를 무조건 다 받아들인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도올이 얘기했듯 교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주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교권을 지켜내는데 마음을 같이하며 일치단결해야만 한다. 3시가 넘은 새벽녘에 글을 탈고하면서까지 도올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교육부총리를 비롯한 위정자들은 교권이 무너지고 있는 교육현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