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만 원을 들여 우리 학교에 현대식 도서관이 들어섰다. 몇 천 권의 장서도 비치하고 제법 고급의 정보 검색용 컴퓨터도 갖춰 놓았다. 이전 도서관에는 없던 많은 책들과 정보기기들로 도서관은 그야말로 최신식 교육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외형만 바뀌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작 문제는 그런 도서관에 와서 아이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책을 읽느냐이다.
"요즈음 아이들 정말로 책 안 읽어. 시험 보면 아이들이 어휘 해독력이 너무 부족해. 단어 뜻을 몰라 문제 못 푸는 경우가 허다해. 정말 문제야!"
종종 모의고사나 교내 시험을 치면서 여타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런 말들이 국어 교과를 맡고 있는 나를 겨냥해서 하는 말씀인양 어깨가 무거워진다.
"선생님, 독서 시간은 독서하라고 있는 시간 아닌가요? 매일 수업만 하고... 제발 책 좀 읽어요."
"이놈아, 독서 시간에는 수능 대비 문제도 풀어야 하고, 교과서 진도도 나가야 하는데 책 읽자고 하면 어떡하니... 차라리 자율학습하자고 해라."
"다들 우리 보고 책 읽으라고 하면서 정작 책 읽을 시간도 주시지도 않으면서…."
책 읽을 시간도 주지 않는다는 학생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정말로 그 아이의 말대로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보충수업을 필두(?)로 오후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수업에 얽매여 정작 편하게 책 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특히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부터는 그 정도가 심해진다.
자율학습 시간이 있다고 하지만 편안하게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수행평가다 뭐다 해서 숙제도 해야 하고, 그리고 수능 공부도 해야 하고, 이만저만 할 게 많은 것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선생님들이나 주변 어른들은 정보화 시대에 독서는 필수라면서 독서하라고 재촉해 대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업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아무리 독서 시간이지만 배워야 할 이론도 있고, 그리고 수능이 너희들 앞에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책만 읽고 있을 수 있겠니?"
"그러면 선생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언제 읽으란 말이에요? 저녁 야자 시간에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야자 마치고 저녁 늦은 시간에 집에 가서 읽으라는 말인지…. 교과서 공부만 한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도서관에 새 책만 구비해 놓았지, 정작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정작 고민해 보지 않았다.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책을 빌려 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납하도록 독촉하는 등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지 정말로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은 고민하지 못한 것이다.
"학교에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보충수업도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들이 책이라고 꾸준하게 읽겠어. 단지 이상적인 생각일 뿐인지. 그냥 집에 가서 읽거나, 쉬는 시간을 짬짬이 이용해서 읽으라고 하면 되지…."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만 읽으라고 하지, 정작 그들에게 학교에서 편안하게 책을 수 있는 시간을 줘 본 적은 없었잖아요. 정보화 시대의 화두가 독서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이들로부터 제대로 독서할 수 있는 시간 한 번 줘 본적인 없다는 것은 정말로 직무 유기란 생각마저 들어요."
"그렇다고 정규 교과시간이나 아침 보충 시간을 빼고 독서시간을 준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봐요. 우선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 교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무작정 책 읽으라고 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는 보는데…."
선생님들조차 독서를 해야 된다는 인식은 있지만, 시간을 따로 내어서 독서할 시간을 준다는 것에는 무리수가 따른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작 정보화 시대가 우리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독서를 통한 창의적인 인간 육성이라면, 과연 우리 현장에서 실시되고 일련의 독서교육은 과연 그 맥락에 부합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수업과 교과 공부에 찌들린 이 시대의 수많은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정작 자신만의 사색과 시간과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간을 돌려 주자. 그리고 그들을 한 번 믿어 보자.
점심을 먹고 급하게 책 빌리러 도서관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편안하게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책을 골라 보는지, 그리고 제대로 고르기나 하는지 먼발치에서 지켜 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밥 먹는 시간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