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화분 몇 개로 집안이 행복해졌습니다

2005.11.21 15:47:00

가을이 깊어가고 입동이 지난 요즘이지만 아직은 가을의 냄새가 나는 우리집 주변이다. 주변에 심어진 단풍은 아직도 남은 며칠이라도 마지막 봉사를 하려는 듯 찬바람에도 색채를 잊지 않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우리 집에서는 이런 가을을 뒤늦게나마 맞아들이기로 하였다. 나는 보통 국화보다 항상 늦게 피는 설국-그것도 송이가 아주 작고 많이 달린 황색 설국-을 매우 좋아한다. 이 설국 화분 몇 개를 구해 다가 현관입구에 진열을 하였더니 7가구 15명의 식구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하여 주었다. 이 설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내가 고향을 떠나와서 경기도에 전입을 하였던 1979년 가을에 이 설국을 가꾸어서 유난히 많은 송이를 달고 있는 설국에 취한 적이 있었다. 이 후로 이 설국을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가꾸었으나, 너무 잦은 학교 이동으로 그만 어디선가 이것을 잃어버리고는 다시 구해서 가꾸다가 또 옮기면서 두고 오곤 하다가 그만 몇 년째 이 설국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1986년 가을에 우리 교실에는 이 설국 화분이 두 개 선물로 들어 왔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여서 교실 유리창 앞에서 꽃이 피고, 오이 덩굴이 자라서 오이가 열린 것을 아이들과 함께 따먹는 파티를 열기도 하였기 때문에 학부모님이 국화 화분을 보내주신 것이었다.

이 국화꽃이 거의 시들어 가려고 할 무렵에 나는 아까운 국화를 그냥 버릴 수 없어서 송이를 모두 따서 깨끗이 씻어서 소주 한 됫 병에 국화 30여 송이씩 두 병의 국화주를 담갔다.

거의 석 주가 지난 어느 날 학교 직원들의 친목 체육대회가 있었다. 나는 이 국화주를 내놓았다. 물론 술병과 함께 아직 시들지 않은 설국 화분에서 따서 씻어서 물기를 말린 국화송이를 준비했다. 술 한잔을 따르고 국화향이 그윽한 그 술잔에 설국 한 송이가 띄워져서 권해진 것이다.

"햐아, 이 향기! 그리고 이 동동 뜬 국화 한 송이 내 평생이 잊을 수 없는 멋진 술잔이로구나!"

감탄사를 연발하는 선배님 덕분에 아주 조그만 정성이 유난히 돋보이고 좋은 추억거리가 되기도 하였던 설국이기에 더욱 정이 가는 지 모른다.

화분을 가져다 둔지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만 날씨가 상당히 추워지고 말았다. 화분을 계단 한쪽에 놓인 다른 화분의 사이사이에 배치를 하였다. 각 층마다 두 개씩 나누어 배치를 하여 두었더니 집안 가득 국화향이 퍼져서 현관문을 열면 집안까지 향기가 스며든다.

아래층의 할머니께서 너무 향기가 좋다고 하시면서 "향기는 너무 좋은데 이렇게 이쁜 꽃들만 사와서 돈이 많이 들었겠어요. 우리는 보니까 좋긴 하지만..."하시면서 미안해하신다.

'온 집안 퍼지는 국화 향처럼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살면 되지 국화 화분 값이 얼마나 된다고.....'

혼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은 한없이 흐뭇하고 풍요로운 것 같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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