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초빙제'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자

2005.12.10 14:07:00

며칠 전, 전임지 직원들을 만났다. 시골의 작은 학교가 다 그렇듯 수시로 얼굴을 대하다보니 근무하는 동안 직원들간에 정이 넘쳤다. 교무실은 아이들이나 교직원들에게 사랑방 역할을 했고, 모이기만 하면 커피 향을 맡으며 아이들 사랑에 대해 얘기꽃을 피웠다.

모든 일들이 민주적으로 이뤄지니 일거리가 많아도 즐거웠다. 교직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니 교육적인 효과도 컸었다. 그래서인지 그때 했던 교육들이 가장 알찼다는 생각을 한다. 한참 전의 일이건만 교육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때의 아이들과 교직원들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이기도하다.

나는 그때 작고 적은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다. 학교 주변에 널려있는 야생화에서 작고 적은 것의 가치를 찾아내며 자연의 섭리를 배웠다. 작은 학교에서 적은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작고 적은 것의 소중함을 알았다.

교직원들이 하는 일도 신바람이 났었다. 적은 인원이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마음을 모으니 어떤 일이라도 못할 게 없었다. 그래서 당시 직원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지고, 만나면 그냥 ‘하하 호호’ 저절로 즐거운 시간이 된다.

나는 종종 지인들에게 그때 같이 근무했던 교감선생님을 자랑한다. 음악을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하고, 종교를 믿듯 직원들을 믿어주는 분이다.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교직원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뒤에서 도와주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라도 더 교직원들과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하는 분이라 존경하는 교사들도 많다.

교감선생님은 앉아있던 자리에 온기를 남기듯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남기며 이렇게 살면 인생살이가 더 재미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그래서 아등바등 모질게 살면서 여러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는 관리자들을 볼 때마다 교감선생님의 인생살이를 생각해본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 교감선생님의 하소연을 들었다. 본성이 다른 사람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사람도 아니고, 모임에 와서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의아심이 들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마음고생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법체계로는 최종 결재권자인 교장선생님 위주로 학교경영이 이뤄지도록 되어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교장선생님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는 교감선생님, 행정실장, 교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좋다. 그게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이고 그러면서 교감선생님, 행정실장, 교직원들의 입지를 넓혀줘야 한다.

학교경영을 최종결재권자 혼자 다하면 다른 사람들은 저절로 무능력자인 로봇이 된다. 아랫사람들을 신뢰하고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이 훌륭한 관리자다. 구성원 개개인을 떠올리며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왜 그 자리가 있고 그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일거리를 줘야한다.

출장비만 해도 그렇다. 학교경영을 책임졌으니 교장선생님이 출장을 많이 다니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경영자가 학교만 지키고 있다고 교육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니다. 동문회나 지역사회에 있는 여러 구성원들이 학교교육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일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교육’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거리불문, 횟수불문 이것저것 찾아다니며 학교출장비를 축내라는 것도 아니다. 학교경영상 할 수 있는 일이지만 1년에 몇 번 되지도 않는 교직원들의 출장비마저 타절해서 지급해야 한다면 왜 불만이 없겠는가? 직원들과 직접 맞부딪치며 고충을 해결해야 하는 교감선생님에게는 권한 밖의 일이니 입장이 어떻겠는가?

교원들의 관심사였던, 교원들이 그렇게 거부했던 ‘교장 초빙 공모제'가 왜 나왔겠는가? 이런 관리자가 아직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리자들이 아직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리자라면 '모든 교직원들이 신바람 날 때 교육은 더 알차게 열매 맺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는 것보다는 직접 실천해 신바람을 일으키며 교육발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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