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이 아쉽다

2006.01.25 09:04:00

방학 중이지만 각급 학교는 '2006학년도 수업일수 감축안' 심의를 위해 학교운영위원회 임시회를 열어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 학운위 업무를 맡은 행정실에서는 1주일 전에 회의 소집 안내를 등기 우편으로 발송하고 또 몇 일 전에는 그 사실을 문자 메시지로 알려 주었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개최되는 오늘 오전, 행정실에는 비상이 걸렸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개인사업 상 모두 지방에 출타 중인 것이다. 이에 반해 교원위원들은 100% 출석하여 대기중이다. 학교장은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고 행정실장은 '회의 소집에 최선을 다했으나 학부모위원들에게서 피치못할 일이 생겼다'고 답하고. 결국, 다음 기회로 회의 소집을 미루자고 한다.

이럴 때 교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올바른 판단으로 교장을 보좌하고 학교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도교육청 학교지원과 담당주사에게 문의를 하니 '급하고 중요한 안건이 아니거나 나중에 시비의 대상이 될 사안이면 다음으로 미루고, 그대로 진행하려면 최연장자나 위원장이 지명한 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관례'라고 알려 준다.

학교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공신력, 운영위원회의 체계성, 다음 유사사례 발생을 대비하여 오늘 그대로 진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의사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학부모위원에게 직접 전화를 하였다. 다행히 학부모위원 세 분이 곧바로 도착, 임시 위원장을 선임하여 안건 심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수업일수 15일 감축안이 통과되어 교육청에 보고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흉보자고, 불참한 그분들 나무라자고 이런 이야기 하는 것 아니다. 학운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분들 생업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자. 불참할 경우, 사전에 알려주어 미리 대비하게 하는 것도 성숙한 문화인의 자세다. 성실하게 출석한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학교도 살리고 개인도 사는 방법, 모색할 수 있다.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내는 지혜와 여유가 아쉬운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이 아쉬운 것이다. 학운위원은 무보수 봉사직이다. 무엇을 바라고 위원이 된 것이 아니다. 위원 각자는 성실한 참여를 통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단위학교의 자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태도로 학운위에 임하지 않으면 학운위는 '거수기에 불과한 꼭두각시' 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조직체 구성원의 위상, 누가 만들어 주는 것 아니다. 구성원 모두 힘을 합쳐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유종의 미(有終之美)'라는 말도 떠오른다. 다음 학운위가 구성될 때까지 선공후사 정신으로 끝까지 소임을 완수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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