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꿈속을 헤매고 있었으니 급할 것도 없었다. 불을 켜고 시간을 보니 아직 5시도 되지 않았다. 모처럼만에 자유를 누려도 되는 일요일인데 왜 불만이 없겠는가? 혼잣말로 불평을 하며 영문을 물었다.
머리를 만져보란다. 단잠을 깨워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머리에서 손이 뜨거울 정도로 열이 난다. 잠이 확 달아나 벌떡 일어났다. 잔병치레는 잘하지만 우연만하면 혼자 견뎌내는 사람이라 더 걱정이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열이 났어?"
"어제 저녁부터."
"그럼 진작 말하지?"
"술 먹고 들어와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깨워."
무심했던 것을 후회하며 그제야 증상을 물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꽉 막힌 것 같단다. 아내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평소와 다르게 먹으면 소화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보름음식이라고 식탁에 진수성찬이 차려진 것이 오히려 화를 만든 것이다.
급하게 실타래를 찾았다. 자주 체하는 아내와 살다보니 손가락 따는데 도사가 되었다. 등을 두드린 뒤 가슴을 몇 번 문지르고 팔위에서부터 손가락 쪽으로 몇 번 쓸어내린 후 실로 엄지손가락을 묶어 바늘로 톡 따면 된다. 금방 검붉은 피가 솟아오른다.
우리 집에는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님이 계신다. 며느리 나이 쉰이 넘었건만 숟가락 하나 놓는 것까지 본인이 직접 참견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다. 그런 어머님을 모시고 사니 명절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야 할 때는 아내가 편하다. 사실 어머님은 아내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며칠 전부터 여러 가지 나물을 사오셔서 보름맞이 준비를 했었다.
나는 어머님이 부지런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청춘에 홀로 되신 뒤 고집으로 우리를 키워 오신 분이기도 하다. 그런 어머님이 평생을 믿어오던 종교까지 바꿔가며 일요일이면 아내와 함께 교회로 향한다.
약을 먹은 아내의 모습에도 활기가 있어 일찍 일어났지만 행복한 아침이다. 오늘도 나는 교회로 향하는 어머님과 아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가 몇 년 전에 썼던 '기도'라는 시를 떠올리며 행복에 젖는다.
기도
가끔
아내의 기도를
옆에서 지켜봅니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은
아내의 기도가
어디까지 들릴까
구원자는 알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묻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그랬습니다
기도라는 걸
알지도 못하면서
소원만 너무 많았습니다
아내의 기도와는 달랐습니다
내가 바라는 게 몇 가지가 이뤄지든
중요하게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그냥 원하기만 했습니다
무작정 내 소원이
이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세상물정 몰라 편했던
무지렁이 같은 삶
끌어안으면서
또 빕니다
가르치는 일
게으름 피우지 않게 하소서
철부지 아이들
배운 대로 실천하게 하소서
사는 동안
불의에 굴하지 않게 하소서
이 사람 저 사람
바른 말 가려 하게 하소서
불행 보면
작은 것에도 눈물 흘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