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았노라

2006.02.27 11:41:00

저녁을 먹고 난 뒤, 아내는 외출이라도 하려는 듯 화장을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서두르라고 계속해서 주문을 하였다.

"얘들아, 늦겠다. 다했니?"

서두르는 모습이 평소와는 달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장을 하고 있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어디를 가려고? 가장인 나만 빼놓고."
"당신은 좋아하지 않잖아요?"

"무얼 말이요."
"아이들 데리고 백화점에 다녀오려고 해요."

"그래도 그렇지. 한번 물어는 봐야 되지 않소?"
"기분 나쁘세요? 그럼 같이 가실래요."

평소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웬만해서 함께 쇼핑을 가자고 제안한 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그것이 더 편한 적이 있었으나 가끔은 가족으로부터 소외감마저 느낄 때도 있었다. 요즘처럼 방학 중에는.

자주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는 백화점을 아내는 늘 버스를 타고 다녔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마다 한번씩 운행하는 버스를 놓칠세라 아내는 허겁지겁 서둘렀던 모양이었다. 나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을 할만도 한데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편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보, 앞으로 백화점 갈 때 꼭 나에게 말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에는 싫어했잖아요?"

"자꾸 지나간 이야기는 하지 말구려. 이제부터는 그렇게 해요."
"난 좋지만, 당신이 귀찮을~."

아내는 함께 가자는 제안이 믿어지지가 않는 듯 내 눈치만 살피며 내게 미안한 듯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서랍에서 사야할 물건을 적은 리스트를 꺼냈다. 대부분의 물품들은 새학기를 맞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백화점의 주차장은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차들로 꽉 차 있었다. 차를 주차시키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자처한 일이기에.

밖은 꽃샘추위 때문에 봄을 느끼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었지만 백화점에 진열해 둔 봄맞이 신상품을 보면서 어느새 봄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각 매장마다 봄을 준비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문구류와 서적, 가방을 판매하는 곳은 가족 단위의 쇼핑객들이 아이들과 함께 물건을 고르는 모습도 눈에 띠었다.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복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비싼 교복 값을 조금이라도 더 깎으려는 판매원과 학부모들 사이에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매년마다 물가상승으로 가계에 큰 부담이라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물건에 표기된 가격을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하물며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노트와 연필 값마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쌌다. 한편으로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그 어떤 곳에서도 줄일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아내가 시장에 다녀오고 난 뒤, 늘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산 것도 없이 돈만 쓰고 왔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에야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매월 지출되는 돈과 물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월급만 갖다주면 다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내는 나의 월급에 대해서는 불평 한마디 늘어놓지 않았다.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한 백화점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 물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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