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엄마 오셨어요?

2006.03.22 21:15:00


"1학년 친구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지요?"
"예, 선생님. 학부모 총회가 있어요."
"그럼, 자기 식구들이 오신다고 한 어린이는 손을 들어볼까요?"

며칠 전부터 예고된 학부모 총회를 독려하기 위해 말귀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1학년 아이들에게 별점을 많이 주겠노라고 광고를 한 탓인지 아이들의 반응이 컸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창밖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의 표정이 여러 가지였습니다.

"선생님, 아빠에게 전화해 주세요."를 연발하며 공부보다는 나를 조르던 고은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별을 10개나 줄 거라고 말했더니 아빠가 꼭 오셔야 한다며 오전내내 나를 조르던 고은이를 겨우 달래서 점심을 먹였습니다. 부모님이 바쁘신 영민이는 오늘따라 유난히 골을 내고 악을 지르며 점심까지 설치며 내 속을 태웠습니다. 아마도 집안 식구가 아무도 오시지 않아서 화가 단단히 났던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 별점을 손가락으로 세어 보며 알림장 사인도, 학습지도 꼼꼼하게 도장을 받아오는 영민이였으니 다른 친구들보다 동그라미 스티커를 받을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다는 것을 잘 알기에 달랬습니다.

"영민아, 선생님도 학부모 총회에 한 번도 가지 못해서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했단다. 꼭 오시지 않아도 괜찮아. 못 오시는 아빠 엄마 마음은 더 괴롭단다."

아무리 달래도 우는 고은이나 골을 부리는 영민이, 기가 죽은 아이들을 보는 게 참 미안했습니다. 내 자식들도 저렇게 학부모 총회때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엄마들이 오는 걸 부러워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습니다. 나도 그런 부모 노릇을 한 번도 못 했으니...

학부모 총회때마다 마음 한 구석 미안해 했던 어미 마음을 내 자식들이 알 때쯤이면 시간이 너무 흘러 버린 뒤겠지요? 내일은 마음 아파한 아이들을 달래 줘야겠습니다. 자식농사보다 더 소중한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못 오시는 부모 마음은 아이들보다 더 무거웠을 것을 생각하니 더 마음을 써야 겠습니다.

학교에 오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안 계셔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아이는 얼마나 졸랐는지 회의 시간이 다 끝난 시각에 교실로 찾아오셨습니다. 밝은 해님처럼 환해진 손자 얼굴을 보고서야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땀을 훔치시는 할머니 손을 잡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 고생이 많으십니다. 더 열심히 가르치고 사랑하겠습니다. 이렇게 성의를 보여주셔서 감동하였습니다. 내년에도 이렇게 오셔서 손자를 기쁘게 해주십시오.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해 주십시오."

학교와 학부모가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하는 시간인 학부모 총회를 통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고 서로의 애로 사항과 부탁을 들어주는 진솔한 자리이며 교육의 출발점이 되는 첫 단추인 만남의 자리이니, 학부모총회는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교실을 비울 수 없어서 신임교사를 소개하는 순간에만 잠시 들러서 학부모님의 건의사항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학기초이니 1학년 어린이들의 안전한 하교지도를 부탁하신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으니, 하교 시간에 각별한 주의를 하렵니다. 19명 모두에게 음식을 골고루 다 먹도록 점심 식사지도를 하느라 시간이 걸려서 개별하교를 시켰는데 내일부터는 대책을 강구하여 학부모님의 걱정을 덜어 드려야겠습니다. 마지막 한 아이까지 곁에 서서 식사지도를 하지 않으면 음식을 버리고 가버리니 빨리 먹는 아이와 나중에 먹는 아이의 시간차가 30분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1학년때부터 편식이나 식사예절을 지도하지 않으면 기본생활태도가 자리 잡히지 않음을 생각하며 아이들 곁에서 점심을 먹는 시간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의 맛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점심시간도 교육의 연장입니다. 가시를 발라주기, 먹기 싫어하는 음식 앞에서 투정부리는 아이를 달래어 먹게 하는 일, 소란스럽게 떠들고 달리는 아이를 지도하며 내 몸이 여러 개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학기초에 발생하고 저학년 아이들에게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19명의 병아리들의 안전한 귀가지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서로 때리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더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했던 미숙함이 부끄러운 하루였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엉덩이에 뿔이 난 아이들을 앉혀 두는 일에 더 신경을 쓴 자신을 반성한 하루입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오셨어요?"를 반복하며 연신 창밖을 보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던 유림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내 곁에 서 있습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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