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지 복제비 제막식

2006.04.26 11:27:00


우리 민족의 긍지를 살려준 사건이 지난해 가을에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일본에게 약탈당했던 우리의 귀중한 역사유물이자 일본의 콧대를 꺾어서 자랑이던 정문부장군의 북관대첩비의 반환이었다. 일본은 자기네 조상들이 임진왜란 때 당했던 치욕의 기록이 들어 있는 북관대첩비를 일본으로 약탈해서 전범들이 모셔져 있는 자기 나라의 신앙의 터이자 자존심의 상징인 야스꾸니 신사의 한 구석에 처박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1909년 조소앙 선생에 의해 이 비의 정체가 밝혀졌었지만, 식민지 시기여서 반환 운동이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었다. 그러다가 1978년에 제일 사학자 최서면 선생에 의해서 이 비가 일본의 야스꾸니 신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본격적인 반환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특히 정문부장군의 후손인 해주정씨 문중에서 반환을 추진하였고, 1979년에는 정부 차원의 반환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있던 것인데 왜 너희들에게 주느냐?'고 하거나, '민간인의 소유여서 정부가 간여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반환을 거절하였다. 이에 지지 않고 여러 단체의 요구가 이어졌고, 1996년 한일불교복지협의회의 센신스님 등이 신사에 반환을 촉구하고 나서게 되었다. 2000년에 초산스님이 중심이 되어서 한일공동으로 반환이 추진되고, 2004년에는 남북민간단체 회담에서 남에서 인수하여 북측에 인도하기로 합의가 되어서

2005년 3월 외교 경로를 통해 요청이 있으면 반환하겠다는 답변을 받아 내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 이 비의 반환운동에 앞장을 서온 초산스님과 독립군의 진골혈통<양친이 독립군, 임시정부요원>을 이어 받은 김원웅의원 등이 앞장을 서서 귀환을 추진해온 것이 드디어 2005년 10월 12일 반환 합의서가 작성되기에 이르렀고, 10월 15일에 제를 지낸 후 출발하여서 10월 20일에 100년만에 다시 고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이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북평사 정문부가 이끄는 의병들이 함경도 길주 등지에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를 격파한 북관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숙종 34년(1708)에 함경도 길주에 건립된 비로,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탈되었다가 100년만인 2005년 10월 20일에 우리 나라에 반환되었으며, 올해 3월 1일 북한에 인도되었다.']<주: 문광부 발표>

북측에 인도되기 전에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앞뜰에 전시를 해서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이 비가 북으로 인도되어 버리면 통일 이전에는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비와 똑 같은 복제비를 만들어서 고궁박물관의 앞뜰에 세우는 제막식을 어제<4월25일> 오후 2시에 가진 것이다.

이어서 열린 학술 강연회에서는 ‘북관대첩비의 찬자(撰者)와 내용에 대한 소고(허권수 경상대 교수) ’임진왜란 중 정문부를 중심으로 한 함경도 지방의 항전‘(이상훈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북관대첩비 관련 일본사료의 검토’(정태섭 동국대 교수) 등에 대한 주제가 발표되었다.

여기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요약하여 전한다면

[북관대첩비에는 왜란 당시에 북평사 정문부가 의병을 모아서 함경도 경성, 길주 등 김종서가 개척했던 국경 지대의 6진을 중심으로 한 함경도 땅을 왜군들에게서 되찾아서 함경도에 왜군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였던 공을 기록한 전승비이다. 특히 이 싸움에서 승전을 한 정문부와 의병들은 당시 함경도라는 위치가 나라의 힘이 거의 미치지 않은 변방인데다가 나라에서조차 별로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땅이었다는데 더욱 큰 의의를 둘 수 있는 것이다. 차별 대우에 분통이 터진 이시애 같은 사람들의 반란이 일어난 고장, 여진이라는 국경을 넘나드는 이웃에게 수없이 당하고 있어도 나라에서 보호받지 못한 설움을 당하는 고장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란에 일부 못된 사람들이 왜군에 빌붙어서 약탈을 일삼는 상황에서 나라를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이 가장 큰 공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서 일으킨 의병으로 왕자와 대신들을 구하기까지 하였으나, 공신에 책록 되지 못하고, 공을 치하하는 비 하나 없음을 크게 깨달은 북변사 최창대가 정문부의 후손과 의병의 후손들을 깨우쳐 북관대첩비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는 것과 이 비에 대한 문집과 비문의 다른 점, 일본 기록에서 찾아본 정문부장군의 승리에 대한 기록 관찰 등]
으로 학문적인 연구 발표가 이어졌다.

어제는 노무현대통령이 독도문제에 대해서 대일 경고성 특별담화를 발표한 날이어서 이 북관대첩비의 복제비 제막이 더욱 뜻 있는 것이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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