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

2006.04.28 09:51:00

지난 2월 명예퇴직하신 강명자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퇴직 후에도 저에게 계속 미치며 어려울 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선생님이 계시기에 소개하며 그분의 따뜻한 손길을 더듬어보고자 합니다.

‘여자수자(與者受者)’란 주는 사람(與者)과 받는 사람(受者)을 말하는데 나는 늘 수자(受者)이고, 그분은 언제나 여자(與者)인 평생 잊지 못할 분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을 처음 만난 건 97년 3월이었다. 언양여상에 같은 날 발령 받아 함께 연구부에서 마주 보고 생활하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분은 사실은 여자(女子)이면서도 여자(女子)가 아닌 여자(與者)다. 1년 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베풀기만 한다. 내가 잘 생긴 남자도 아니고 매력을 줄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나뿐만 아니다.

8시가 되어 출근하고 있노라면 사흘이 멀다하고 빵이며, 우우며, 과일이며, 정성이 담긴 떡이며, 각종 차며.... 너무 많아 헤아릴 수조차 없다. 특히 기억나는 건 학교 사택에서 자취하며 고생한다고 김치를 손수 정성껏 담궈 온 것과 97년 11월 울산여고에 수능시험 감독으로 갔을 때 식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김밥과 과일을 가지고 와 동료교사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일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항상 나는 수자(受者)이고 그분은 언제나 여자(與者)인 것은 함께 근무했던 1년 동안만이 아니다. 98년 3월 1일자로 시교육청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도 그 베품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횟집에서, 쌈밥집에서 저녁을 대접하는가 하면, 교육청에 같이 근무하는 분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찰떡을 해서 음료수랑 보내오는 것도 수차례나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에게는 번번이 수자(受者)가 되고 만다.

그분은 음악 선생님이시고 저보다 나이가 2살 위인 강명자 선생님이시다. 뛰어난 미모의 여성은 아니더라도 여걸(女傑)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늘 수자(受者)가 되어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의 풍기는 모습은 남자로 태어났다면 대장부(大丈夫)로 불릴 만큼 덩치가 크고 가슴은 넓다. 여장부(女丈夫)란 강 선생님 같은 분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것만이 아니다.

강 선생님은 크고 작은 길흉사에는 거르지 않고 약방 감초처럼 꼭 나타난다. 특히 흉사에는 여자의 몸으로 오기 힘든데도 잘 빠지지 않는다. 99년 1월 저의 부친상에도 울산서 그 먼 마산까지 남자 선생님들 속에 끼여 있었다. 다음달 함께 근무했던 석구환 선생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역시 그 곳에도 남자 선생님들 속에 혼자 여선생님을 대표해서 앉아 있었다. 좋은 일 궂은 일 할 것 없이 빠지지 않는 그분!

강 선생님의 봉사활동 영역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들은 이야기지만 동네에서는 선생님이라고 점잔빼지 않고 동네 아줌마와 어울려 음식과 정담을 나누기도 하며, IMF 한파로 생활이 어려워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쌀을 팔아 주며 격려했다는 사실은 봉사정신이 투철한 여걸(女傑)이 되기에 충분했다.

내가 ‘98 교원컴퓨터 야간연수 담당자로 울산공고 멀티미디어실에서 밤늦게 수고한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와서 두 주 동안이나 ‘컴맹인 내가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며 청강생으로 컴퓨터연수도 받으시며 김밥이랑 간식을 싸다 주며 격려하기도 했다.

강 선생님의 베품, 사랑, 격려 등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데 분명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고 보통 사람이 받지 못한 부모로부터 받은 거룩한 유산일 것이다.

강 선생님이야말로 참된 베품의 모범자이다.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동기도 없이 그저 베풀고 싶어 베푸는 순수한 베품의 실천자이다. 그러기에 강 선생님은 나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며 나의 누님이 되기에도 충분하다.

잘 베풀지 않으면서도 간혹 여자(與者)의 위치에 설 때, 은근히 기대하는 얄팍한 심성을 지닌 나를 꾸짖어 주는 스승! 여자(與者)가 되어 꼭 내색을 하고 마는 나를 꼬집어 주는 스승! 베풀고 싶은 마음은 가졌어도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던 나에게 관심을 갖도록 격려해 주신 누님!

강 선생님은 조그만한 가식이나 이기적인 동기를 찾아볼 수 없다. 가식 없고 꾸밈없는 관심과 사랑,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손길! 이 손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어려운 시기에 더욱 생각나고 진한 여운을 맛보게 되는 건 그분이 남긴 흔적이 너무 고귀한 때문이 아닐까?

강 선생님의 진한 향기 풍기는 인간미는 단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때문만은 아니리라. 시간만 나면 독서에 몰두하는 선생님이었기에 틀림없이 어떤 분이 낡은 건물을 볼 때마다 무료로 페인트를 칠해주었다고 하는 미담 등을 책을 통해 읽었을 것이고, 어느 신문 기사 중 자원봉사자의 중년 부인 미담사례-매주 이틀씩 병원에 들려 안내방송도 해주며, 방문객들의 편의 제공 등-도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억척같이 번 재산을 유산으로 물러주지 않고 대학교의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기사. 어떤 직장인이 퇴근길에 꼭 종합병원의 병실에 들러 환자들을 위로해 주고 간다는 기사. 암 말기 환자들만 찾아 말친구가 되어 주면서 격려해 주는 어떤 노옹의 기사 ... 등을 무수히 많이 접하였으리라.

이와 같은 것들이 물러 받은 유산 위에 알파로 작용하여 더 훌륭한 여장부(女丈夫)로 거듭나게 했을 것이다. 이 유산은 아마 사랑하는 딸이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강 선생님의 유산 위에 딸 특유의 알파가 작용하여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한때 방어진 울기등대 안에 있는 연수원의 숙소에서 생활하는 덕택에 대왕암에서 자주 동해의 일출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약간의 구름 속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되었다. 이 장면은 40평생 처음 보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찬란하지 않으나 곱기 짝이 없고, 구름 가린다고 태양이 머뭇거리지 않고, 중도 포기하여 떨어지지 않고 불평 불만하지 않고, 이탈하지 않으면서 평상시와 같이 떠오르는 모습. 구름 속에 떠오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일출. 그 엄숙하고도 장엄한 광경은 직접 눈으로 지켜보지 못한 사람은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은근한 아름다움. 구름 속을 수놓으면서 퍼지는 햇살의 너그러움. 출렁거리는 푸른 바닷물마저 감동되어 붉은 물결로 동화되는 모습을 구름 속의 일출 광경에서 다 볼 수 있으니 그 기쁨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까?

강 선생님!

베푸는 것 보고 배아파하고 이간질하고 돌아서서 험담하는 자 있어도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 빛이 찬란하지 못해도 머뭇거리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후퇴하지 말고 이탈하거나 변색되지 말고 평상시와 같이 은근함과 너그러움으로 구름과 같은 회색의 사람들에게 불겋게 물들여 그러한 자들도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에 동참시키고, 나름대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갖고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자도 누님의 햇살아래 동화되어 더욱 예술적 가치가 있는 차원 높은 한 폭의 작품을 완성해 나에게 선물해 주시구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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