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교육

2006.05.25 15:25:00

약 한 달 보름 전 일입니다. 아침 6시 반에 집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뒷마당에는 아줌마들이 분리수거를 한다고 한창이었습니다. 우리 아파트에는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많이 사는데 바쁘게 출근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아파트 담장에는 개나리가 길다랗게 줄지어 웃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에 보답이라도 하듯이요.

아침 7시 조금 안돼 학교에 도착했는데 그 때에도 와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오기는 걸렀습니다. 당직하시는 분에게 물어봤더니 두 분 선생님께서 밤 12시까지 계셨는데 그 중 한 선생님이 저랑 같이 교무실에 들어왔습니다. 고마울 뿐입니다.

아침에 차를 타고 오는데 몸이 무겁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나 자신이 몰라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변화가 보인다’고 하던데 저 자신이 그러네요. 이제 30년 교직생활에 접어듭니다만 이렇게 일찍 출근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물론 누구를 의식해서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지요. 몸도 ,마음도 편하면 더욱 좋겠지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니 그런 대로 좋네요. 작년에는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거든요.

우리 학교 안에도 봄이 찾아오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봄기운에 소생하듯이 교무실을 비롯한 각 실에서도 태동소리를 듣게 됩니다. 최근에는 여러 선생님들의 변화도 발견하게 됩니다. 담임이 아닌데도 8시 전에 나오시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는가 하면, 전에 찾아보지 못했던 밝은 모습과 미소를 종종 발견하게 되거든요.

어제 점심시간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창회 한 간부께서 전에는 교장 선생님의 얼굴이 밝지 못해 무엇이 뜻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민망해서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 얼굴이 너무 밝으신 것을 보니 말씀 안 하셔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느끼겠더라는 겁니다.

어느날 저녁 야자시간에 WBC 4강의 주역 김인식 한국 야구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창단 5시즌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본 울산모비스 유재학 감독에 대한 리더십을 읽어보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두 분다 선수들을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믿음의 야구, 농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 믿음 주니 승리로 답하고, 유 감독은 선수 개개인에 대한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신뢰감을 잃지 않는 믿음의 야구를 하니 그들의 숨을 실력을 발휘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우리학교에도 두 감독과 같은 '믿음의 교육'을 펼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우리 선생님들에게는 많은 학생들이 맡겨져 있습니다. 이들의 단점보다 장점을 잘 파악하고 믿어주고 신뢰해 주고 격려해 주면 숨은 자질들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생명이 끝난 선수를 채용, 기용하여 신뢰를 보내니 유명한 선수로 거듭나듯이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인정하고 밀어주고 신뢰를 보내는 '믿음의 교육'을 펼칠 때 보다 나은 학생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야자 시간에 3학년 담임을 하시는 어느 선생님과 대화를 잠시 나눴습니다. 작년 3학년 학생들은 처음에는 열심히 하더니만 갈수록 처지는 현상이 있었는데 금년 3학년 학생들은 갈수록 열심히 하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이고 자신감을 찾아볼 수 있어 고무적이라고 합니다.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이면 지켜보시는 선생님도 덩달아 신이 나서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여러 선생님, 학년초기에 건강에 신경을 쓰시고 완급조절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선생님 중에는 밤늦게 어느 학생에게 자기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들어주면서 한 시간 가량 상담을 하다 자기도 모르게 잠시 졸기도 했답니다. 또 어느 선생님은 목에 피가 나올 정도로 목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건강이 제일입니다. 천하를 얻고도 건강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건강! 건강! 건강!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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