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시절의 순수한 열정 회복

2006.06.01 09:16:00

6월을 시작하는 첫날 아침입니다. 우리학교에는 교목인 태산목이 세 그루 있는데 그 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드디어 세상을 향해, 하늘을 향해, 학생들을 향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도 꽃도 잎도 다 큼지막한 나무로 목련에 비하여 꽃이나 잎이 크기 때문에 태산목이라고 한다는데 목련처럼 새하얀 꽃잎이 보기가 좋습니다. 태산목은 드디어 우리학교의 학생들에게 태산처럼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듯이 선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난 수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는 3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학생들이 많으냐고 물었더니 오늘 이현주 선생님께서 기간제 근무기간이 끝나는 날이라 아쉬운 나머지 석별의 정을 나누려고 이반 저반 학생들이 모여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선생님의 책상 위에 보니 케이크, 캔음료수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선물이 수많은 편지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보이지 않아 찾아보았더니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있더군요.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이 떠난다고 교무실에 와서 인사를 하는 걸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선생님이 어떤 분이지 아마 미루어 짐작이 가리라 봅니다. 이 선생님은 숙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중인데 휴직 중인 선생님을 대신하여 우리학교에 임시로 오셔서 근무하는 분이십니다.

저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어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어느 선생님보다 더 잘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출,퇴근할 때 꼭 인사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담임이 아닌데도 야간자율학습 감독에도 참여하여 밤10시까지 학생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교문지도하는 날이면 아침 7시30분까지 출근하여 교문지도를 합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오느냐고 물으면 식사를 하지 않고 온답니다. 수업도 친언니처럼 다가가 차분하게 잘 하십니다. 어디 누가 기간제 선생님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잠시 머물다 떠날 임시직인데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몸이 약해 보이는데도 열심히 하는 순수한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도전을 안겨다 줍니다.

이 선생님은 키도 크고 인물도 예쁜데다 마음씨도 곱고 목소리도 아름다우며 서울에서 생활한 덕인지 표준말을 사용하는 것이 맘에 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썩 잘 입고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선생님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은 다 갖추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선생님께서 떠나신다고 하니 학생들이 당연히 아쉬워했을 겁니다. 너무나 아까워 교장 선생님과 의논하여 조금이라도 우리학교에 더 근무해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했지만 임용고사 준비로 극구 사양을 하더군요.

오늘 떠나는 이 선생님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선생님들은 수업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학습자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봅니다. 또 학급관리와 생활지도, 인성지도, 교문지도, 자습지도 등을 위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직생활 몇 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어떤 선생님은 순수성은 없어지고 처음 열정이 식어감을 보게 되어 안타까움을 더하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왜 처음 가졌던 순수한 열정과 행위를 잃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언제부터, 어디서, 무엇 때문에 교직생활 시작할 때의 모습이 사라져 가는지 냉철하게 살피는 자기성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하루 빨리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되돌아와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이유든 출발할 때의 순수성을 잃고 우리의 열성이 식어지고 처음 열정이 사라지고 있다면 임시교사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선생님들의 초임시절의 모습으로 되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게 학생들을 위한 길이 될 것이고, 자신을 위한 길이 될 것이며, 나아가 교육발전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는 세 가지의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기피형과 무관심형과 열정형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행위를 기피하는 기피형은 뒤에 물러나 비판하고 말이 많고 부정적인 측면만 말하고 책임의식이 없다고 합니다. 있으나 마나 하는 무관심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열정형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열심히 하는 형이라고 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열정형 선생님이 되었으면 합니다. 학생들에게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가르치고, 학교에 대한 불평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조금만 더 가지고,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조금만 더 가져봄은 어떨는지요.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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