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과 안타까운 것

2006.06.30 13:39:00

선생님, 오늘은 마음이 좀 가볍지 않으십니까? 학생들은 기말고사로 인해 힘이 들겠지만 선생님들은 4일간 수업을 하지 않으니 그나마 부담이 적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학교의 꽃인 백합이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네요. 작년보다 키도 훨씬 크고 꽃도 더 하얗고 큼직하며 우리 학생들의 순결을 뽐내듯이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우리의 교목인 태산목도 함께 새하얀 꽃을 피우고 있으니 학생들의 무궁한 성장을 기대하고 있으니 더욱 볼 만합니다. 더위를 식혀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험기간이고 하니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시험을 앞두고 아름다운 모습과 안타까운 모습이 함께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시험기간 때는 학생들이 알아서 공부를 잘 하기 때문에 늦게 출근해도 될 법한데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시간이 일정함을 봅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일찍 오셔서 교문지도를 하네요. 부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출근하셔서 근무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아침 8시 교실을 둘러보니 2층에서 한 선생님께서 학생 한 명과 함께 골마루를 쓸고 있었습니다. 정말 보기가 좋네요. 보통 때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어떤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등교하면서까지 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 귀한 시간에도 자기의 할 일을 하는 학생의 모습이 우리의 백합처럼 환하게 다가옵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도 구석구석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오늘도 변함이 없으니 정말 감동적이더라구요.

평소와 같이 교실을 지키시는 선생님이 눈에 띄네요. 학생들의 휴대폰을 일일이 보자기에 넣는 선생님도 보이시구요. 교실탁자에 앉아 함께 공부하시는 선생님도 계시구요. 구석구석 정리하시는 선생님도 계시구요. 마른 더위에 마음까지 말라가는데 오늘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다시 생기가 돕니다.

교장실에는 오늘 시험감독으로 수고해 주신 학부모님께서 20명이 와 있더군요. 교무부장 선생님과 함께 사전준비를 하는 모습도 진지했으며 보기가 아름다웠습니다.

담임선생님 한 분은 자기반 학생이 며칠 전 맹장수술을 했는데 상처도 아물지도 않고 다시 꿰매야 하는데도 고통을 참으면서 시험을 치려고 하는 의지와 집념의 학생도 만납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반면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봅니다. 교실 골마루에는 보통 때보다 더 많은 머리카락이 보입니다. 학생들이 시험에 대해 얼마나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리카락 한두 개가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머리카락이 무더기로 곳곳에 보입니다. 빗자루로 쓸고 주워도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참고 인내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희망을 느낍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어제 한 선생님께서 여러 선생님들에게 메신저를 보냈는데 내용을 보니 이러했습니다. ‘씨크리트 체크 펜 소개입니다. 학교 앞 애플 팬시에서 현재 팔고 있는 상품인데 1000원이랍니다. 보기에는 평범한 형광펜이지만 글씨를 쓰면 보이지 않고 불빛 아래에서는 글씨가 드러납니다. 펜 끝에 후레쉬가 달려 있습니다. 책상 위나 손등, 허벅지, 어디든 쓸 수 있습니다. 컨닝용으로 악용될 수 있을 소지가 있어 게시판에 견본 제품을 붙여 두겠사오니 감독시에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드러내 놓고 말하려니 오히려 역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선생님들께만 이런 방법도 있구나 아시라는 노파심에서 쪽지를 돌립니다. 이런 펜을 보시거든 그냥 뺏어 주세요.’

학생들은 점수를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를 만들어내는 업체도, 이를 파는 문방구가 있음을 보면서 이들도 함께 반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기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학생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그런 행위는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또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오늘 감독으로 나오시기로 되어 있는 학무모님 중 두 분께서 아무 연락도 없고 참석도 하지 않음을 봅니다. 이렇게 무성의하고 책임의식이 없으니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못 한다고 해야지요.

또 안타까운 것은 방송이 갑자기 되지 않아 이를 고치기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아침 메신저에 이렇게 양해를 구하네요.‘어제 날씨로 인해 학교 차단기가 내려가서 지금 복구를 하고 있지만 안 되어서 기계담당자가 9시 5분경에 오시기로 되어있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이해해 주십시오..빠른 시간 내에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자기의 맡은 업무를 하시는 모습들이 우리들의 꽃 백합만큼이나, 우리들의 교목 태산목의 새하얀 꽃만큼이나 아름답고 보기 좋습니다. 정말 좋은 하루의 시작입니다.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하네요. 더위를 식혀줄 좋은 소식이니 힘내시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셨으면 합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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