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9일 저녁 9시 35분. 좀 늦은 시간인데 전화가 울리고 아내가 받아들더니, 얼른 송화기를 막고서 "여보 광주 선생님이신 것 같은데요."하면서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자주 전화 드리지도 못한 제자에게 이렇게 친히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하는 인사와 수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은사님은 "치우려던 월간 문학에서 자네 작품을 발견하고 다시 읽어보았네. 7월호를 치우려고 하다가 우연히 펴진 쪽에 바로 자네의 작품이었네. 난 시조 부분과 시 부분만 읽고 치우곤 하였는데, 덕분에 자네 작품을 읽게 되어서 전화했네."하시면서 "요즘 동화 작품에서는 전래 동화 같은 짜릿한 감동 감화를 주는 작품이 별로 없어, 자넨 동화를 쓰면서 무엇에다 기준을 두고 쓰는가? 다시 말해서 자네 동화의 문학정신 말일세."하시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런 질문이시고, 또 은사님의 말씀이라 함부로 답 할 수도 없는 그런 질문이었지만, 내가 평소에 가진 나름대로의 기본 정신이 있기에 서슴없이 "선생님, 제가 교직에 몸담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역시 동화란 [교육]을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문장이어야 하지만 바탕에 흐르는 정신은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하고 답했다.
"그렇겠지. 자네 작품에서도 그런 냄새가 나대 만은...." 하시더니 "그런데 자네 작품에 쓴 말 중에 [맞는 이야기였습니다.]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거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맞는]은 현재 진행형이어서 [맞은]으로 써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그리고 <조그만> 이란 말이 <조그마한>의 준말이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역시 <조그만> 보다는 <조그마한>이 더 잘 맞는 말은 아니었을까?"
하시는 것이었다. 나도 한글학회 정회원이 될 정도로 한글에 대해서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우리 은사님은 80고령이 되신 오늘까지도 우리말에서 아직도 쓰이는 일본투의 말,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뜻도, 출처도 모르고 함부로 쓰고 있는 일본말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시고 계시는 분이시다. 문학과 한글운동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지적인 입장에서 네게 주신 가르치심이었다.
이어서 "<진검승부>라는 말을 아직 젊은 시인이 썼는데, 이건 일본 사무라이들의 용어일뿐 우리말이 아닌데, 유식한 척 자랑스럽게 쓰고 있더란 말일세, 어디 그뿐인가 <축제>,<제동> 같은 말에서 쓰이는 [제]는 일본식이라는 걸 모르고 쓰고 있는 것일세. 일본 사람들은 이런 행사를 치르기 전에 반드시 제사를 올리고 하기 때문에 쓰는 말이고, 우리는 <축전> 이라고 써야 하네, 중국, 대만, 북한에서조차 [축전] 이라고 쓰고 있는데 우리만 [축제]란 말일세. 심지어 조계종 본사에까지 전화를 해서 따지고 고치도록 이야기 한 적도 있네."하시면서 몇 가지 더 일본식 말을 이야기하시고 나서 "자네 문학의 정신을 정립하소. 그리고 전래동화의 맛을 느끼는 그런 작품을 쓰도록 하게."하시는 가르침으로 전화를 마치셨다.
1956년 6학년 담임을 맡아 주셨던 50년 전의 은사님께서 이제 정년 퇴임을 한 제자에게 이렇게 전화를 주시고, 가르치심을 주신 것이다.
난 이렇게 자랑스러운 은사님의 6학년 때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어서 신문에 기고를 했던 적이 있었고, 그것이 KBS 1TV에서 [TV 동화 : 행복한 세상]에 방송이 되기도 하였었다. 참 스승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신 이야기는 <주전자에 흘러 넘친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2005년 2월 26일에 방송이 되었었다.
진정으로 참 스승님이신 양동기 은사님의 건강을 빌면서, 이렇게 자랑을 할 수 있는 은사님을 둔 제자는 <청출어람>이 되지 못하였음을 엎드려 사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