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의 정문을 들어서면 진입로의 오른 쪽에 나무들이 서있고, 그 밑에 우리 나라의 각종 들꽃들이 심어져 있다. 이 들꽃을 볼 수 있도록 사잇길이 나 있으니까 여름엔 시원한 오솔길 역할을 해준다.
야생초들이 심어진 오솔길의 뒤편에는 야외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너와집이며, 물레방앗간, 디딜 방앗간, 농기구 같은 연장을 만들던 성냥간, 그리고 김칫독을 묻어 두고 겨우 내내 맛있는 김치를 먹게 해주었던 김칫간, 여름 무더위에 시원하게 낮잠을 즐기시던 원두막이며, 정자나무 그늘, 60년대 초까지 서울 거리를 달렸던 전차, 가을걷이를 한 곡식을 담아 주었던 벼 뒤주, 낟알을 찧어 내던 연자방아, 움집, 귀틀집 같은 것들을 초등학생들의 사회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다. 여기 야외 전시장에서는 이런 것들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너와집은 나무의 껍질이나 나무를 얇게 켜서 기와 대신으로 지붕을 이은 집을 말한다. 참나무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고, 산 속에서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산 속에서 구하기 힘든 기와 대신으로 이용한 집이다. 이 너와집은 두 가지 모양을 볼 수 있다. 움막집 형태의 너와집은 화전민들의 촌락에서 움막용으로 이용을 하던 것으로 김칫간이나 화장실용으로 쓰이던 집 모양이다. 이렇게 지붕이 뾰쪽하고 넓지 않은 모양의 움막 형태는 산간에 넓은 평지가 흔하지 않아서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지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집의 형태이다. 보통 집과 같이 팔작지붕<양쪽으로 비스듬한 두 면만으로 이루어진 지붕>모양의 집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이 사는 집으로 지어지며 지붕만 다를 뿐 일반 한옥 또는 초가집과 같은 모양이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레방앗간은 민속박물관의 정적을 깨뜨리며 늘 쿵더쿵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물레방아의 축에 매달린 날개가 디딜방아를 눌렀다가 놓았다 하면서 방아를 찧게 해주고 있다. 물레방아가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축에 말린 4개의 날개<프로펠라>가 돌아가면서 디딜방아를 눌렀다가 놓기를 계속하니 4번 방아를 찧는 것이다. 교통이 불편한 산골에서 농사지은 곡식을 멀리 방앗간까지 가지고 가서 찧어 올 수가 없기 때문에 집 가까이 있는 시내를 이용하여 방앗간을 만들어서 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물레방앗간을 만들기도 어려운 곳에서는 디딜방아를 이용하였다. 디딜방아는 절구통과 작은 공간<마굿간 같은 곳>만 있으면 간단하게 설치할 수 있고, 집에서 여자들이 힘들여서 절구에 곡식을 찧는 일을 힘을 덜 들이고, 발로 디딜방아를 밟아주고 놓아주기만 하면 곡식을 찧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곁에는 농기구 같은 연장을 만들던 대장간이 있다. 사람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질을 해서 숯을 빨리 타게 만들어 준다. 그 센 숯불에 벌겋게 달구어진 철이나 다른 금속을 커다란 쇠망치로 두들겨서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모루라는 커다란 쇳덩어리가 밑받침이 되고. 그 위에 달궈진 쇳덩이를 놓고 두들기고, 달구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연장의 모양을 만들게 된다. 다 만들어진 연장은 빨갛게 달구어진 다음에 아주 차가운 찬물 속에 넣었다 건져내기를 되풀이하면서 쇠의 성질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면 연장으로 쓰기에 좋은 연장이 된다. 어느 날인가 이 곁을 지나는데 일본 노인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대면서 "한, 국 대,장.간도 일본노 대,장,간과 똑 같아요." 하고 서투른 우리말로 말을 걸어와서 한 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마치 서커스에서 삐에로가 쓰는 고깔을 엎어놓은 것 같은 움막 모양의 집이 있다. 김칫독을 묻어 두고 겨우 내내 맛있는 김치를 먹게 해주었던 김칫간이다. 움막의 한쪽에 아주 낮으막한 출입문이 있고 그 속에는 땅바닥에 묻혀 있는 김칫독이 보인다. 이렇게 묻어둔 김치는 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도 그 맛이 변하지 않고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게 해준다. 그 까닭은 움막으로 가려둔 곳에 묻힌 독은 땅 속의 온도가 별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김치의 맛이 변하지 않게 해준다. 요즘 [딤채]라는 전기김장독이 있는데 바로 이 땅속에 묻는 김칫독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 곁에는 여름 무더위에 시원하게 낮잠을 즐기시던 원두막이며, 정자나무 그늘이 있다. 나뭇그늘에서는 일에 지친 어른들이 낮잠을 주무시고, 어린이들은 땅 바닥에 고누를 그려 놓고 고누 두기를 하거나 땅따먹기 같은 놀이를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었다.
박물관 앞의 야외놀이터 곁에는 움집과 귀틀집이 있어서 들어가서 집의 형태를 살펴 볼 수도 있게 해주고 있다. 그 뒤편에는 가을걷이를 한 곡식을 쥐나 다른 동물들이 먹지 못하게 하고, 썩지 않게 잘 보관할 수 있는 벼 뒤주가 마당 한 가운데를 차지하게 된다. 이 벼뒤주는 볏짚을 엮어서 만든 것도 있고, 나무 판자를 써서 집안에 두는 곳도 있지만, 이엉을 엮어서 몇 달 동안만 곡식을 담아 놓는 곳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보관해둔 곡식을 사람이나 물레방아 같은 것이 아닌 소나 당나귀 같은 가축의 힘을 이용하여 낟알을 찧어 내던 연자방아가 보인다. 연자방아는 어마어마하게 큰 맷돌이라고 할 수 있다. 맷돌은 위 아랫짝이 수평으로 놓이는데, 연자방아는 약간 원뿔 모양으로 위아래 둘레가 다른 돌을 맷돌 위에 올려놓고 힘을 주면 이 돌이 구르는 힘을 이용하여서 맷돌 위에 놓은 곡식이 껍질이 벗겨지게 하는 장치이다. 이런 연자방아가 있는 집안은 곡식이 굉장히 많은 부잣집이 아니면 어림도 없는 농기구이다.
마치 기차처럼 보이는 전차가 한 칸 있다. 60년대 초까지 서울 거리를 달렸던 전차이다. 전차는 도로 바닥에 철로를 깔고 그 위를 달리는 지하철이라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전철은 그 힘이 약해서인지 두 칸 정도로 달렸고, 요즘 전철은 전차보다 2배도 넘는 큰 찻간을 10칸이나 달고 쌩 소리가 나게 잘 달릴 수 있다.
옛날 전차는 차의 속도가 느리고 정거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달리는 전에 올라타기도 하고 뛰어 내리기도 할만큼 속력도 느리고, 손님도 기껏해야 몇 십 명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정도였다. 차가 가까이 온다는 신호는 "딸랑 딸랑" 종소리를 내면서 달렸었다. 모두들 차에 올라서 기관사가 되어서 딸랑딸랑 종소리도 내어 보고, 전차의 운전대도 잡아 볼 수가 있다. 손님이 타는 자리에서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