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은 열매로 떠난 아이

2006.09.12 08:43:00

또 한 아이가 교정을 떠나갔다. 몇 차례 설득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던 아이는 눈물 한 줌 보여주고 총총히 떠나갔다. 두 달 만에 본 아이는 맑았다. 힘듦 속에서도 건강하게 지냄을 보니 일단 반가움이 먼저 일어 웃음을 주었더니 녀석도 웃음을 준다.

"얼굴이 좋아졌구나. 우리 악수부터 하자."

아이가 수줍게 손을 내밀더니 피식 웃었다. "웃음이 나오냐, 녀석아!" 하는 소리에 눈물을 비추며 또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아이는 눈물을 삼키려 애썼다. 먼저 아이와 감정의 교류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고개 들고 선생님 봐. 네가 무슨 죄인도 아닌데 고갤 못 들어. 괜찮으니까 고갤 들어라."
"그냥 죄송해서요."
"임마, 죄송하면 다시 학교 다니면 돼. 그러니 마음 한 번 바꿔보렴. 난 너랑 함께 가고 싶거든. 네가 속 썩여도 웬일인지 네가 미운 마음이 전혀 안 들어. 너도 선생님 좋아하잖아."
"모르겠어요. 근데 겁나기도 해요.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지금 돌아온다고 해도 또 나갈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이는 돌아설 듯하면서도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그럼 자퇴를 하지 말고 전학을 가라고 해도 그것도 싫다고 한다. 무엇이 이 아이의 마음을 돌아서지 못하게 했을까 생각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아이와 이야길 끝내고 아이 엄마와 이야길 나누었다. 아이한테 좀 더 많이 신경 좀 써 달라고 하자 아이 엄마는 모든 걸 아이 탓으로 돌렸다.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도 왠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아이는 조금의 말썽을 부리고 방황은 했지만, 모든 문제를 아이한테 돌리긴 그랬다. 아이들의 탈선할 때의 정황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에 있음을 자주 보아 왔다. 집에서의 불안정한 마음은 학교에까지 연결되고, 부적응 상태로 빠져들었다. 학교에서 부적응은 나중에 학교를 떠나는 걸로 끝맺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며칠 더 보류하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다시 아이하고 더 얘길 나눠 보세요. 그리고 너도 좀 더 생각해보구. 다시 말하지만 난 널 그냥 보내기 싫단다. 네가 마음을 바꿔 끝까지 함께 갔으면 좋겠는데…. 잘 생각해 봐. 알았지?"
"네."

아이가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했지만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도 난 아이가 쓰고 간 자퇴서를 제출하지 않고 내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아이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연락드릴게요"라고 한다. 그리곤 힘없는 미소를 뿌려놓곤 반 아이들이 기다린다며 교무실을 나섰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을 만나자 녀석은 금세 반가운 웃음을 주고받는다.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보다 하면서도 가끔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아침 독서 시간이면 아이의 자리는 늘 빈 채로 놓여있다. 그 아이의 사물함엔 아직도 그 아이가 쓰던 연필과 노트와 책이 그대로 있다. 녀석의 흔적들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든 아이를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보낸다는 건 슬픈 일이다. 조금만 인내하고 생각한다면 잘 해나갈 아이들이 그 잠깐의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걸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보다가 홀로 덩그러니 매달려 익어가는 감을 보자 그 아이 생각이 부쩍 난다. 아직 그 아인 덜 익은 열매인데…. 앞으로 맑은 공기, 맑은 햇볕의 자양분을 먹고 세상의 비바람을 견디어야 할 작은 열매인데 하는 생각에 짧은 한숨이 나온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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