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우선해야 합니다

2006.09.13 22:18:00

오늘 저녁은 기분이 좋습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더니만 비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네요. 우리 학생들도 때를 만난 듯 많은 학생들이 운동장 트랙을 돌고 있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운동장 트랙을 30분 정도 걸었습니다. 기분이 상쾌해지더군요.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구요. 오늘 저녁에 시간 나시면 식구들과 함께 산보를 좀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오후 보충수업 시간에 조용한 교무실에서 세 학생의 지각에 대한 반성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세 학생의 반성문을 읽고 선생님도, 학부형님도, 택시기사님들도 모두 학생을 우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를 굳게 세워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1학년 학생의 반성문을 읽어보니 평소와 같이 일어나서 평소와 같이 집에서 나왔는데 친구를 기다리다가 늦었다고 하네요. 시간이 늦어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택시기사님들이 차를 세워주지 않더라고 합니다. 거리도 가깝고 돈이 안 된다고 그러나요. 울산여고에 들어오는 길이 일방통행이라 복잡해 그러나요.

그래서 이 학생의 반응은 분했습니다. ‘택시기사님들에게 진짜 교육 다시 받고 택시운전했으면, 제발 법 좀 지키세요, 안 그럼 다른 사람이 또 신고할지 누가 알아요?’ 오죽 했으면 반성문에 이런 글을 썼겠습니까?

우리 기사님들께서는 학생들을 우선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버스탈 것 아닙니까? 돈 없는 학생들이 택시를 타려고 했을 땐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겠습니까? 지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학생들을 외면하지 말아야죠? 내 자식처럼 말입니다. 수능시험 때는 수험생 우선으로 택시를 태워주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베풀어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한 학생은 아버지와 함께 나오는데 자기는 시간 맞춰 준비가 다 됐는데 이날따라 아버지께서 늦게 식사하시고 나오는 바람에 늦었다고 하네요. 아버지께서 애가 지각할 것을 생각하시면 일찍 서둘러 주셔야죠. 아버지 때문에 지각을 해 벌을 받고 반성문을 쓰게 됐으니 평생 아버지 때문에 지각하고 벌 받았다고 할 것 아닙니까? 부모들님께서도 애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리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학생은 3학년인데 새벽 3시 45분에 잠을 잤는데 시계도 깨어주지 않고 부모님도 깨워주지 않았으니 당연히 지각할 수밖에는요. 부모님의 무관심이 3학년 학생을 당황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찌 지각하도록 애를 깨우지 않습니까?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 학생들은 말미에 지각 따위의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두 달만 더 노력해 자랑스런 졸업생이 되도록 노력 또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고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특히 3학년 학생은 반성문 중간에 선생님의 지도에 대한 고마움이 표시되어 있는데 가슴에 와 닿아 그대로 옮겨 봅니다.

“ 오늘 교문지도 선생님께서 지각한 저에게 웃으시면서 상냥하게 말씀해 주셔서 더욱 많이 반성했습니다. 수능치고 난 뒤 그 선생님을 꼭 찾아뵙겠습니다. -중략-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교문 앞에 서 계시면서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 선생님들을 생각해서라도 지각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날씨도 추워지고 하면 더욱더 교문지도하기 힘드실 텐데 걱정입니다...”

아마 이 학생을 이렇게 감동스럽게 한 것이 바로 교문지도하신 선생님의 부드러운 리더십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저 같으면 틀림없이 ‘3학년 학생이 지금 어느 땐데 지각하고 그래, 정신 바짝 차리지 않고’ 하면서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께서는 싱긋이 웃으시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공부한다고 힘들지? 조금만 더 참아, 지각하지 않도록 신경도 쓰고 건강관리도 잘하고 알았지?’ 이 학생은 보나마나 감동어린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하지 않았겠습니까?

잔뜩 긴장되고 기가 죽어 있는 학생에게 강한 리더십보다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학생을 편안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새힘을 불어 넣어주는 그 모습을 그려보면서 잠시나마 찡한 감동을 느껴봅니다. 선생님, 우리 학생들에게 지각을 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교훈과 지도의 말씀이 있었으면 합니다. 시간에 너무 인색하지 않도록 지도하셔야죠. 시간에 끌려가기보다 시간을 끌고 가는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쳤으면 합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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