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국의 교원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교육자치법 개정안과 연금법 개악에 대하여 규탄대회를 한다고 한다. 이미 내 마음도 거기에 가 있다. 돌팔매를 던지고 싶은 심정이다. 참여정부 이후 더욱 악화되는 교육현실을 바라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어느 신문에서 본 내용이 떠오른다.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 조금만 참고 기다리겠다.” 그러나 최근 교원들은 이젠 누구하나 믿고 의지할 데가 없다고 절망하고 있다.
지방의회에 교육위원회가 편입되는 교육자치법만 보아도 그렇다.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엄연히 단독 의결기구로서 기능과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교육위원회를 지방의회에 편입하려 하는가?
교육의 독립성과 자주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법안이다. 교육은 그 속성상 그 결과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독특한 영역이다. 단기적인 사업이 아니고 장가적인 국가 발전 전략이다. 지방자치에 편입되어 있을 경우 지자체 단체장들이 가시적 효과가 금방 보이지 않는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에 단체장들이 활발하게 벌인 사업이 무엇인가. 단체장들은 축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있었다. 많게는 4~5개씩 있는 자치단체의 축제행사에 나와 축사 몇 번 하면 임기가 끝나버린다는 비아냥도 있지 않은가. 그것은 주민들과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좋은 방안으로 재선을 위한 하나의 책략이라고 한다. 정치는 단기적이고 또한 가시적이다. 가시적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끌어 모아야 하고, 감정을 공유해야만 다음 재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사고와 전략이 다른 교육을 지방의회에 편입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의심스럽다.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가. 예산절감을 위한 것인가.
현재에도 교육위원회는 별로 힘이 없다. 교육청에서 기획한 각종 사업이나 전략이 교육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또 지방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구조이다. 차라리 하나의 역량이 부족하고 믿을 수 없다면 없애버리든지, 아니면 전권을 주어 책임을 가지고 해보라고 하든지 하지 이게 무슨 장난이란 말인가. 지방의회에서 교육위원회의 의결 사항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논쟁을 벌이는 동안 중요한 교육 사업이 축소되거나 또는 시기를 놓친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새로 입안한 교육자치법은 개악이다. 교육의 특수성도 살피지 못했고, 권모술수가 강한 정치의 아래에 둠으로써 교육을 경시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에도 교육청에 지원하기로 한 지방예산들이 묶여 있거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단체장들이 당장의 효과성이 없는 교육에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정할 리 없다.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 자립도가 어떠한가. 서울, 부산, 경기도 정도를 제외하고는 형편없는 상황 아닌가. 열악한 지방 재정으로 사업 하나 제대로 구상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단체장들이 교육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6,70년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지역을 만들어 얼마나 국민통합에 어려움이 많았는가? 또 좋은 여건에서 교육 받은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나누어서 국민들을 또 갈라놓을 작정인가?
이번 교육자치법은 단순히 교육위원회의 지방의회 편입차원에서 볼일은 아닌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단체장이 교육을 총괄하게 하고 교원의 지방직화를 위한 노림수라는 설도 있다. 맞는 얘기인지 아닌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만약,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면 이는 40만 교원을 우롱하는 것으로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이다.
교육은 국가 발전 전략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해찬 장관 이후 우리 교육은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엉뚱한 일만 하다가 중심을 흐려 놓았다. 교육부총리와 함께 임기를 마치겠다던 참여정부에서도 벌써 여섯 번째 장관이 바뀌었다. 교육부 회의실에 장관 사진 여섯 장 늘리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한다.
교육의 속성과 가치를 구현할 수 없는 교육자치법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양극화 이상의 부작용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또한 어떤 합목적성에도 맞지 않는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방교육을 현저하게 왜소화할 우려가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