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선의 옛마음이 담겨있는 '옛 그림의 마음씨'

2006.12.04 08:33:00


얼마 전 한 지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지인은 달항아리에 대한 느낌을 전율이라고 표현했다. 일본의 한 전시관에서 달항아리를 마주하는 순간 그 친구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신비함에 빠져 30여분을 그 자리에 서서 그 달항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다.

달항아리에 대한 어떤 것이 그렇게 만들었냐고 묻자 그 친구는 '완전한 비움, 순진무구함, 어떤 완벽함 그리고 신비로움' 뭐 이런 표현을 빌려 말을 했지만 달항아리라는 것을 한 번도 듣지도 구경도 못한 나에겐 그 말들이 그저 귓전을 윙윙거리고 맴돌고 가는 바람소리처럼 들렸었다.

그러다 이번에 그 달항아리를 다시 한 번 듣게 되었다. 아니 보게 되었다. 이우복의 <옛 그림의 마음씨>라는 책을 통해서다. '옛 그림의 마음씨'라는 예쁜, 아닌 정겨운 이름 속에서 내가 감상한 것은 많은 그림들과 그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옛 선인들의 영혼과 손끝에서 피어난 도자기의 순수였다. 그리고 난 글을 따라가다가 예의 그 달항아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달항아리를 보고 큰절을 하다

회색빛 어스름 무렵에 서 있는 것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 항아리 사진을 바라보며 "이게 정말 그 친구가 30여분을 멈추어 서서 바라보던 달항아리란 말인가"하는 밋밋함을 드러내며 지인의 말과 저자의 말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눈을 감고 사진 속의 항아리를 음미하듯 그려보았다. 그러나 내겐 어떤 신비함이나 황홀감이 다가오지 않았다.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었다. 출근시간이 일러서 늘 새벽에 일어나야 했지만, 그날은 더욱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으로 어슴푸레한 여명이 사위를 감싸고 있었다. 늘 그렇듯 먼저 문갑 위의 달항아리에게 시선을 옮겼는데, 그 자태가 몹시 장엄하고 황홀하였다. 순간 벌떡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첫인상과는 또 다른 무엇으로, 항아리는 감히 범접하기 힘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새벽에 바라본 달항아리를 보고 큰절을 하였을 정도로 어떤 신비감과 황홀감에 빠졌다는 이우복. 이후 그는 달항아리를 마음속의 신령으로 대하게 되었다 한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백자 항아리를 신령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대체 그 달항아리라는 작품이 그렇게 완벽할까.

"달항아리는 이 땅의 도자기 전체를 통틀어 고전적인 조선 맛이 가장 잘 배어있는 명품이다. 매우 아릅답고 기품이 넘칠 뿐 아니라 단순 간결한 형태와 그윽한 조화가 뛰어나서 한국도자기의 대부 격이다. 한마디로 완벽하고 잘 생겼다."

윤용이 교수는 백자 달항아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일본의 한 전시회장에서 달항아리를 보고 넋을 잃고 서 있었다는 지인이나 이우복의 말이 조금은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헌데 조선의 맛을 드러내는 것이 어디 도자기뿐일까. 그림에서도 그 맛을 한껏 맛볼 수 있다.

학이 되어 날아간 화선 김홍도

단원 김홍도나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웬만큼은 들어 알고 있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풍속화가 정도로 알고 있는 단원은 못 그리는 소재가 없을 정도로 천재화가로서 실력을 능히 펼쳤다 한다. 풍속화는 물론 산수화, 도석인물화, 영모 · 화조화, 사군자 그리고 초상화까지 그렸다고 하니 그림의 신선이란 말이 허투루 생긴 말이 아닌 듯싶다.

저자는 단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평소 접할 수 없었던 그림과 그에 대한 느낌 · 생각들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있다. 스님인 듯한 사람이 봇짐이 매달린 긴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세워 얼굴을 받친 채 웅크리고 있는 '습득도'란 그림을 보고 세속을 초월한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그 느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우복은 그림을 대할 때 화풍이나 회화사적 의의를 따지기보다는 그림을 그릴 당시의 상황으로 파고들어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읽는 독자도 저자의 마음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 작가의 마음에서 그림과 글을 감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단원의 말년작으로 보이는 '목동귀가'란 그림을 이야기하면서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개짓을 하고 날아가는 그림 '비학도'를 바라보며 학이 되어 날아간 화선 단원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옛 그림에 대해 새로운 시각, 새로운 맛을 주다

<옛 그림의 마음씨>를 쓴 이우복은 좀 특별한 사람이다. 특별하다는 것은 그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업가란 측면에서 그렇다. 한때 대우그룹 부회장을 지냈던 그가 사업과는 상관이 없는 우리의 옛 그림과 도자기 그리고 여러 민예품을 수집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것은 좀 새롭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자전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접했던 화가들의 이야기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을 과장 없이 받은 느낌 그대로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에는 맛과 품격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우리 미술품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는 전문가들에 의해 쓰인 글과 비교할 때 새로운 시각과 맛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우복의 <옛 그림의 마음씨>는 우리의 미술품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기쁨은 평소 접할 수 없는 이중섭, 겸재, 단원, 변관식, 최북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나 '백자 개구리 연적' 등 도자기와 조선 서민들이 향취가 묻어있는 민예품을 감상하고 그에 대한 느낌들을 함께 공유했다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다가온다고 한다. 돌을 사랑하면 돌이 나를 사랑하고, 미술품을 사랑하게 되면 되레 미술품이 나를 사랑한다고 한다. 어쩌면 이우복의 미술품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닌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뜯어보고 서술하는 양태가 단순한 미술 애호가나 수장가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의 진솔한 삶과 생각, 미술에 대한 넘치는 사랑, 많은 예술가나 학자들과의 교유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저자의 본태적 심미안은 이처럼 오랜 관심과 애정, 드러내지 않는 공부를 통해 그 자신만의 세계로 다져진 듯하다"라는 미술사가 안휘준의 말은 이우복의 글이 어떤 것이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곁에 두고 조선의 맛을 느끼고 싶을 때 꺼내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옛 그림의 마음씨>. 많은 사람들이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조선의 멋, 순진무구한 자연미를 느껴봤으면 한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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