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란 호칭에 담긴 혼란

2006.12.08 13:04:00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 중의 하나가 ‘선생님’이다. ‘선생님’이란 ‘선생’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나온 ‘선생’의 뜻을 살펴보면 가장 흔히 쓰이는 의미로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의미가 점점 분화되면서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을 의미하고, ‘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부르는 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디 또 그뿐인가.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남자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조선 시대에, 성균관에 둔 교무 직원을 이르는 말’이며, 또는 ‘각 관아의 전임 관원을 이르던 말’이기도 하다.

‘선생’과 비슷한 옛말을 찾는다면 ‘훈장’이란 말이 있다. ‘훈장’이란 옛날 ‘글방의 선생’을 이르는 말이다. 또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사람을 이르는 예스런 말’이다. 영어사전에서는 이에 맞는 말이 ‘Teacher’이다. 이 ‘Teacher'는 ’학교 또는 유사한 교육기관에서 직업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요, 또한 존칭의 의미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 현실은 ‘선생님’이란 말이 남용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교육계에서도 일반직 중심의 공무원노조와의 협약에 의해서 기능직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이도록 한 바 있다. ‘선생님’이란 용어 사용의 인플레 현상을 불러 온 대표적 사례의 하나이다. 바로 그 이후부터 학교를 비롯한 모든 교육기관에는 ‘선생님’들로 꽉 차 버렸다. 또한 은행, 관공서, 증권회사, 병원, 약국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시장, 이발소, 목욕탕, 백화점 등에도 온통 ‘선생님’들이 점령을 하고 말았다. 가히 우리나라는 ‘선생님’ 세상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선생님’이라는 말이 좋은 의미이니까 모든 사람에게 붙여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일지는 모르나,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는 정체성의 혼란을 주는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는 거지까지도 선생님이 되고 있는 세상’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한때는 학교 선생님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진 세상에서 흔하게 붙여 쓰는 말이 ‘선생님’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누구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일 수 있는 세상은 현실 세계에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상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분명 이상세계이고 별천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선생이라고 붙여 쓸 수 있는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인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이젠 너무나 흔히 쓸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 쓰임의 빈도만큼이나 흔한 것이 어쩌면 ‘선생님’이고, 그 흔한 만큼이나 특별한 구석이 없는 것이 또한 ‘선생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정말 두렵기까지 한다. DJ정부 이후 계속된 교사 때리기는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촌지수수와 부패에 오염된 선생님들을 연중 카메라에 담아냄으로써 선생님은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무도 선생님을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게 되면서 ‘선생님’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흔한 존재가 되었다.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을 만큼 ‘선생님’이란 호칭 또한 국민적 대중성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학교의 선생님’과 ‘일반 선생님’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호칭의 남발은 ‘선생님’에 대한 비아냥거림과 얕잡음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일반직을 '선생님'부르는 경우, 대체로 직위가 낮은 분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시골 학교의 행정실장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교육기관의 과장이나 계장을 선생님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보면 '선생님'이란 호칭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낮은 지위'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나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매우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선생인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선생’이 아닌 사람에 대하여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는 것도 낯설다. ‘선생님’이라는 말에 대하여 일반 사회인들이 그렇게 집착하고 있으니 이 말은 국민 대중을 이르는 말로 돌려주고, 진짜 가르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새로 만들어 쓰자는 사람도 있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선생님’이란 말은 가르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일반들에게 쓰는 ‘선생님’이란 호칭은 일종의 장식품이지만, 선생님에게 붙이는 ‘선생님’은 하는 일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디 어울리기나 하는가. 선생님을 ‘과장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선생님’외에는 적당히 어울리는 호칭이 없다.

혹자는 너무 편협한 사고에 빠져 호칭 하나 가지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고 질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물을 대하는 이름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우리들의 이름에도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것처럼 ‘선생님’이란 호칭 속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기대와 바람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아무 의미도 공유하지 않은 채 일반인을 지칭하는 의미로 남용되고 있는 ‘선생님’이란 용어가 너무나 어색하지 않은가.

아무에게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의미한다. 또한 ‘선생님에게 거는 기대 또한 별것 아니다’는 사회 적 인식의 일면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여 쓴다면 그 만큼 우리 교육은 위축되고 만다. 선생님이 ‘선생님’이어야 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미사여구가 아니다.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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