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아이들의 '아나바다 시장' 이야기

2006.12.15 22:03:00

아침에 등교하면 서로 목례만 하고 바로 아침독서에 들어가는 우리 반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내게 다가와서 뭔가를 속삭이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나바다 시장'을 하는데 가져온 물건들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선생님, 오늘 아나바다 시장 해요?"
"쉿! 지금은 독서 시간이야. 독서 시간 끝나고 이야기하자."
"저는 오늘 10원 짜리 동전을 많이 가져왔는데요?"
"응, 잘 했어. 어서 독서를 해야지?"

바른생활 시간에 쓰레기 처리를 바르게 하는 방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재활용 문제를 얘기하면서 '아나바다 시장'을 말해 놓고 나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우리 반 꼬마 화가인 유림이가 분홍생 골판지에 타이틀을 만들어서 가지고 왔답니다. 글씨를 파서 골판지에 붙이고 꾸며온 솜씨가 아까워서 교실 뒤쪽에 붙여 두었지요.

그랬더니 그 다음날은 선영이가 또 꾸며 놓았습니다. 내가 말을 하면 평소에는 늘 그림만 그리던 유림이 귀에 '아나바다 시장'이라는 단어가 번쩍 띄였던 겁니다. 내 말은 나중에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내 말의 뒷부분만 들은 아이가 준비를 해 와서 참 기특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아나바다 시장을 열기 위해 일주일 동안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을 각자의 집에서 가져와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 활동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며 가치 있어야 하며 전인적 성장을 도와야 함을 생각하며 통합 수업 형태를 생각했습니다. 교육과정을 세밀히 검토한 다음, 통합 학습지를 만들고 수업을 계획했습니다. 며칠 동안 언제 하느냐며 나를 졸라대던 아이들은 날마다 낑낑대며 뭔가를 들고 오며 좋아했습니다.

생각 끝에 바른생활의 '쓰레기를 바르게 처리 해요'와 슬기로운 생활의 '시장 놀이'와 '1학년 마무리', 수학의 몇십 더하기 몇십', 그리고 국어 공부를 통합했습니다. 가장 비싼 물건은 100원을 넘지 못하게 하고 10원 단위로 가격을 매기게 했습니다. 학습지에 판매할 물건의 이름을 적는 것은 쓰기 공부요, 팔 물건을 친구들 앞에서 광고하는 일은 말하기이며 물건 값을 합하는 일은 수학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1,2학년)은 사고 발달의 수준이 아직 미분화되어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개념이나 법칙, 이론을 형성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학생들에게는 학습 과제와 활동을 세부 영역으로 구분하여 제시하는 것보다는 통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책상을 디귿자 모양으로 배열하고 물건을 전시한 아이들의 광고가 끝나고 학습지에 가져온 물건의 이름을 적는 아이들 중에는 물건의 이름을 어떻게 쓰는 지 묻는 아이에서부터 물건을 사려고 가져온 10원 짜리 동전들 구르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습니다. 1학년 아이들 중에는 수리 개념이 발달하여 백단위 이상의 계산이 가능한 아이도 있지만,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100이하의 덧셈입니다. 그래서 모든 물건은 10원 이상으로 정하여 100원 이하로 하다보니 수학 책에 나오는 계산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습니다.

2시간에 걸친 시장이 끝나고 학습지에 판 물건의 이름과 값, 산 물건의 이름과 값을 적어서 합계를 내며 셈을 하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10원 짜리 열개가 100원이 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고은이는 신기한 듯 셈이 끝난 돈을 자꾸 세어 보며 좋아했습니다. 친구의 바지를 20원 주고 사서 입은 서경이, 책벌레인 아영이가 가져온 책도 10원짜리 동전에 팔려 가고 선물로 받은 인형을 내놓은 세현이 인형은 서로 사려고 해서 가위 바위 보로 팔렸습니다. 작아진 옷을 몽땅 가져온 유림이는 많이 사는 친구에게는 포장까지 해준다며 쇼핑 가방에 옷을 담아 주는 어른스런 모습에 깜짝 놀랐답니다.

동생에게 준다며 작은 구두를 사간 영찬이는 보물단지처럼 까만 구두를 가장 속에 담으며 참 좋아했습니다. 아직 새 옷인 여름 반바지를 가져온 해솔이의 옷도, 유림이의 청바지를 몇십원에 산 명범이의 즐거운 모습, 엄마의 손가방을 나리에게 판 원빈이, 온통 장난감을 들고온 민혁이 주변에 남자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서로 사가려고 모여들었습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으로 끝나면 교육 효과가 미약하니 합계를 계산해 보기, 하고 난 느낌을 발표하고 문장으로 쓰게 했더니 기대 이상의 답변들이 나와서 놀랐답니다.
"친구의 예쁜 옷을 아주 싸게 사 입어서 좋아요."
"좋아하는 책을 사서 참 기뻐요."
"이렇게 물건을 서로 나누면 쓰레기도 줄이고 재활용하니 참 좋겠다는 것을 알았어요."
"10원 짜리로 하니 수학을 더 쉽게 할 수 있어요."
"다음에도 또 하면 좋겠어요." 등등 학습지마다 빼곡이 들어찬 글자와 숫자를 학부모님이 보시고 이야기를 시키면 더욱 교육적이겠지요?

거기다가 4명씩 한 모둠이니 모둠장을 중심으로 서로 묻고 답하며 계산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글씨까찌 서로 가르쳐 주니 협동학습의 효과까지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빨리 끝낸 모둠에게는 모둠 점수와 개인 점수를 올려주어 칭찬하고 도화지를 주어서 오늘 행사를 스케치하게 했더니 참 좋은 그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준비해 간 나의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으로 고장이 나는 바람에 사진을 한 장면도 남기지 못한 것입니다. 서로의 옷과 책, 장난감을 나누며 우정을 확인하고 재미있게 공부까지 한 오늘의 이벤트는 앞으로 갑종 수업안으로 작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학습은 유익하고 즐거워야 함을 다시금 깨달으며 나도 참 행복했답니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의 일기 내용이 어느 때보다 풍성할 것 같습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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