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의 인간적인 고뇌

2006.12.27 08:48:00

어제 아침은 방학하는 날인데도 많은 선생님들께서 평소처럼 일찍 오셔서 학생들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아침 자습시간을 둘러보았더니 교실에 입실해서 학생들을 지도하는가 하면, 함께 청소하시는 선생님이 계시는가 하면, 학생과 상담하시는 선생님도 계시는가 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선생님들이 열정을 가지고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지니게 됩니다.

오늘은 방학 첫날입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일찍 등교합니다. 선생님들도 일찍 오셔서 보충수업을 준비합니다. 그래도 선생님, 마음이 좀 편하지 않습니까? 저도 많이 가볍습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일로 얼마나 긴장이 되었던지 많은 증세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입술이 틉니다. 평소에 좋지 않던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계속 불면증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제는 방학에 접어들어 학교에 대한 부담도 적습니다. 인사 관련 서류도 어제 마무리하여 교육청에 제출하고 나니 한시름 놓게 됩니다. 그렇지만 평소의 습관처럼 방학이지만 일찍 오게 됩니다. 그 습관을 고칠 수 없나 봅니다. 오늘 8시 20분부터 보충수업이 시작되는데 직무연수, 출산휴가 등 각종 사유로 인해 보충수업을 하지 못하는 선생님을 대신해서 수고하시는 선생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립니다.

유예관계가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어제 한 선생님께서 결재로 인해 오신 것을 보고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속으로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교장선생님께서도 어제 아침 일찍 전 선생님들에게 메신저로 유예문제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를 나타내셨습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 오늘 아침에 읽어보았는데 지금까지 여러 해를 학교에서 보냈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고뇌를 해보긴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60평생 인간적인 고뇌를 처음 해볼 정도로 이번 유예결정이 어려웠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교장선생님의 처지가 원망스러울 정도라고 합니다. 대신해 줄 누군가 있다면 해결을 맡기고도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 유예관계로 교육청에 세 번이나 건의를 했고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담당자에게 우리는 특수여건이니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올리겠다고 할 정도로 애썼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능력부족으로 돌리는 겸손함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선생님들이 참으로 많은데 이분들의 얼굴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하고 죄송스럽다고 하시면서 이 죄송함이 오래오래 교장선생님의 마음이 빚으로 남을 것 같다는 심정을 토로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철철 넘치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끝으로 자랑스러운 선생님들에게 여러모로 서운하시겠지만 그런 감정 거두시고 새로운 학교에서 훌륭하신 교장, 교감선생님 그리고 좋으신 선생님들과 만나길 바라며, 또 다른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그 열정을 마음껏 펼치길 바랐고 슬기롭게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 더 보람된 생활하시기를 기원하셨습니다. 앞길을 축복하고 기도하는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 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의 이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녹아졌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차가운 가슴을 훈훈하게 녹여주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교장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유예와 관련해 충분히 말씀을 드리지 않고 전적으로 교장선생님에게 일임해 60평생 처음으로 보름 동안이나 인간적인 고뇌를 하게 한 죄책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정말 죄송할 뿐입니다. 만약 제가 개입했다면 교장선생님의 뜻과는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개입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께서는 판단력이 탁월하시고 앞을 내다봄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잘했다고 자위해 보기도 합니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신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을 저로서는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아마 여러 선생님께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남은 저의 교직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여러 선생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 선생님! 나쁜 마음, 나쁜 생각은 다 버리셔야죠. 박노해 시인은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나만 생각하는 나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셨으면 합니다. 언제나 좋은 마음, 긍정적인 마음,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한 해를 잘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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