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묵은 것들도 대부분은 오랜 세원 동안 갈고 닦아 온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 많다. 묵었으니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비능률적이고 비효율적인 묵은 것이라면 당연히 개선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혁신해야 할 것이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비리나 부도덕, 불합리한 각종 행태들,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간과하는 의식구조 등은 반드시 고쳐야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오랜 세월동안 갈고 다듬어 관련된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익숙해져 있는 법·규정 등은 구태여 과격하게 고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완벽한 법·규정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개선을 수없이 되풀이 하며 나름대로 합리적인 법·규정으로 다듬어져 왔다. 현재의 교원승진규정도 수십 년 동안 갈고 다듬어진 것이다. 모든 교원들이 잘 적응하면서 규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적극 대비하고 노력해 온 것이다. 충격적인 개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일 뿐이다.
개정되는 규정대로라면 20여 년 또는 십수 년 동안 착실하게 대비해 왔던 다경력 교사들의 승진 기회가 박탈될 위기에 쳐해졌다. 15-20년 경력의 후배교사들에게 밀리게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규정을 철통같이 믿고 심혈을 기울여 왔는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뜻하지 않는 규정의 개정으로 절망적이다. 참담한 마음을 갖고 학생들 교육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학생들과 신명나게 어울리면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 교사이니까 학생들을 위해서 그런 사적인 감정이나 욕심은 버려야 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교사는 승진보다는 열정적인 학생교육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할 수 있을까?
현재의 승진 규정으로 승진하는 모든 관리자들에게 과연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경력이 많아서? 박사가 아니라서? 현재의 근무평정으로는 옥석을 가리지 못해서? 패기 넘치는 젊은이가 아니라서? 물론 완벽한 규정은 아닐 것이다. 개선의 여지는 필요하지만 적당한 연공중심에 개인적 능력을 중시하는 승진규정이다. 경력, 근무평정, 각종 연수성적, 각종 가산점 등을 평정 대상으로 한다.
새 규정에서는 십년 동안의 근무평정 결과를 적용한다고 한다. 교직경력 5-10년만 되면 그 때부터 좋은 근무평정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관리자의 비위만을 맞추어서, 동료교사들과의 업무 협조보다는 자신의 우위만을 확보하기 위한 이기적인 교직사회가 될 우려가 따른다. 교수·학습에 최선을 다하고, 학생 생활지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복무규정에 어긋나지 않게 성실하게 근무하면 틀림없이 좋은 근무평정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교사가 많아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한 소규모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원들은 승진 충족 근무평정에 절대적으로 부당한 평정을 받게 된다. 결국 교원 수가 많은 대규모 학교를 선호할 수밖에 없게 된다. 농어촌 근무 인센티브보다 근무평정이 더 중요한 승진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농어촌 소규모학교의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변화와 개혁은 필요하다. 특히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한 관습이나 제도, 법, 규정들도 없진 않다. 그렇지만 관계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도의 충격을 안겨주는 혁신은 재고되어야 한다. 현장의 유기적인 상황들을 간과한 정책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다. 새로운 규정을 확정하기 전에 다양한 현장의 의견을 새겨듣고 반영해야 한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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