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의 편견, 고립되는 내 아이

2007.02.02 08:58:00


교사들이 학부모님들과 진지하게 상담을 원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학부모님들이 수업시간, 점심시간, 오후에 업무를 보고 있을 때 등 그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셔서 자신의 자녀에게 해를 입힌 아이들을 불러내어 나무라거나 허공에다 대고 무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교장실이나 교무실에서 소리를 지르시며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일들이 간혹 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학교는 술렁이게 되고 아이들이 그와 같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남거나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겨울방학식이 있던 날이었다. 아침 직원조회를 마치고 교실로 올라가려는데 검은색 코트 차림의 어떤 남자 분이 앞서서 복도 계단을 급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학급 영은(가명)이의 아버지였다. 영은이 아버지는 영은이가 1학년 때부터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그것은 영은이가 집에 와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중에 조그마한 일이라도 영은이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있으면 다음 날 학교에 오셔서 당시 상황에 대해 확인하시는 일들이 간혹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은이 부모님은 또래 학부모님들에 비해서 나이가 많으신 편이다. 부모님은 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하셨고 어렵게 영은이를 낳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영은이의 부모님은 영은이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영은이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이시다. 어머니께서 공장에 다니시면서 생활비를 조금 벌기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디스크로 일을 하지 못하고 거의 집에서 생활하시므로 생활보호대상자로 어렵게 생활해 나가고 있다.

영은이가 3학년이 된 지난해는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오늘 영은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행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은이 아버지,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하니 무뚝뚝한 소리로, “선생님과 얘기할게 아니에요.” 하면서 무조건 복도를 올라가신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인지했으나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영은이 아버지께서는 6학년 교실로 가시더니 한 학생을 데리고 다시 1층 현관으로 내려가셨다.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굳은 얼굴로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리포터도 뒤따랐다.

현관에서 6학년 학생 H를 세워놓고 영은이가 도대체 H가 무서워서 학교에 못가겠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말해보라고 다그치셨다. H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채 그동안 영은이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였다. 이야기인 즉 학교에 오고갈 때 영은이의 말하는 태도가 6학년인 H를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 할 시간이 없어서 이야기를 못하다가 동네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시간을 약속해놓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그 뿐이 아니잖아. 또 뭐라고 했어. 다 알고 있단 말이야.” 하면서 소리치셨다. 그때서야 울면서 영은이 아버지가 동네에서 술 먹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을 몇 번 보았다고 말했다고 했다. 영은이 아버지께서는 H에게 자신은 술 먹은 적도 없을뿐더러 우리 딸에게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냐며 앞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겠다고 소리를 지르셨다. 영은이 아버지는 또 이대로는 안된다고 하시며 확인했으니 이제 H의 집으로 찾아가서 결판을 내겠다고 하셨다. 방학식 날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교사들은 멍하니 상황만 바라보고 있었다.

H가 자신이 한 말을 모두 다 자백했고 영은이 아버지께서 확인을 한 마당에 교사들이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아’다르고 ‘어’다르다라는 말이 있듯이 H가 했던 말을 영은이에게 전해 듣고 H에게 확인했다고 영은이 아버지께서 H를 정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른이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고 또 같은 동네에서 얼굴을 부딪히다보면 선, 후배로서 주고받는 그들만의 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은이 아버지께서는 단시간에 얻어진 수확에 만족하며 우리 아이를 지켜 냈다고 마음에 위안을 삼으면 안 될 일이었다.

6학년 선생님께서는 영은이 아버지의 일련의 행동에 매우 놀라는 표정이었다. “영은이 아버지, 제가 H를 2년 동안 담임을 했는데 이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 시간을 좀 주시고 충분히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란 말에 “선생님들은 학부모 입장이 아니어서 모른단 말이에요. 선생님도 아이가 하는 말을 다 들으셨잖아요.”라고 일축한다. 리포터도 옆에 있다가 “오늘이 방학식이니 학급의 아이들을 모두 보낸 후 차근차근 영은이와 H의 말을 들으면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했으나 “교사들은 어떤 사안에 대하여 가볍게 생각하고 부모만큼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아요.” 하시며 그 어떤 말도 들으시려고 하지 않았다.

영은이를 담임하면서 리포터는 그 누구보다도 영은이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밝게 생활하기는 하나 가끔 교사와 급우들을 당황하게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체육대회가 있는 날 달리기를 1등하지 못했다고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수가 작기 때문에 세 명씩 달려 모두가 상을 받도록 한다. 그런데 3등을 했다고 엉엉 우는 것이었다. “영은아, 영은이는 리코더도 잘 불고 피아노도 잘 치지 않니?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들은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란다. 그러니 울지 말고 언니, 오빠들이 달리기 하는 것 구경하자.”라고 달래어도 계속 우는 것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학급 경필 대회를 열고 각자가 글씨를 잘 쓴 친구들에게 스티커를 붙여주는 일이었는데 잘 썼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에게는 모두 스티커를 붙여 주므로 스티커의 개수를 세면 차이가 날 뿐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회를 열었으니 개수가 많은 아이들 차례대로 상을 주게 되었데 상을 받지 못했다고 그치지 않고 우는 바람에 교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뿐 아니다. 그렇게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큰 소리가 나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거나 친구들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줄 때는 교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무척 당황하였었다. 칭찬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어떤 방법으로라도 불만을 표현하는 영은이를 어떻게 하면 바르게 지도할까를 항상 생각 하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하였다. 영은이가 살고 있는 곳은 ‘담터’라는 곳으로 학교와 좀 떨어져 있는 곳인데 아이들 여러 명이 함께 결어오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오기도 한다. 그런데 영은이만은 항상 혼자 다니는 것이었다. 이상히 여겨 알고 보니 영은이 아버지께서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행동이 별로 좋지 못하니 그 아이들과 놀지도 말고 함께 다니지도 말라고 한 것이었다. 그 일로 동네 친구뿐만 아니라 학급의 모든 친구들과도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영은이 어머니의 일로 또 한 번 놀란 적이 있는데 특기적성발표회 날 있었던 일이다. 우리 학교는 규모가 작은 학교로 거의 전교생이 참여하는 특기적성발표회는 매우 큰 학교 행사 중에 하나로 꼽힌다. 특히 특기적성부서 중에 피아노부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다. 영은이는 피아노부원으로 특기적성발표회에 참여하였다. 우리 학급 여학생들이 거의 피아노 특기적성을 하고 있어 리포터도 끝까지 지켜보았다. 영은이는 피아노 소리가 조금 작기는 했어도 손모양도 좋았고 그런대로 잘 친 편이었다.

문제의 사건을 다음 날 알게 되었는데 특기적성 업무를 맡고 있는 L선생님께서, “이 선생님, 어제 특기적성발표회 마치고 영은이 어머니께서 특기적성부서의 피아노 선생님한테 와서 따진 것을 알고 계세요?”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영은이에게 피아노 선생님이 곡 선정을 잘못해 주어서 피아노 치는 것이 별로 보기가 안 좋았고 또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피아노 연습을 제대로 못시켜서 자신감이 없이 피아노를 쳤다는 것이다. 이 말에 당황한 특기적성 피아노 선생님은 특기적성 담당교사를 찾아와서 하소연했고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겠노라고 하였다는 것이었다. 열악한 가운데 어린이들 피아노 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교사에게 감사의 인사와 격려는 고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이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전화를 하면서 영은이에게도 전화를 하였다. 영은이와 몇 마디 나누었는데 옆에 어머니께서 전화를 바꾸신다. “선생님, 우리 영은이 아빠가 방학식날 학교에 찾아가서 무슨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요?”하였다. 40여일이 다되어 가지만 영은이 어머니께서는 그 때 그 일이 지금까지 걸리셨던 모양이었다. “방학식이 있기 전 아침 시간이어서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여 저도 그 일이 궁금하였어요. 어떻게 잘 해결되었나요?” “네...네...”하시며 얼버무리는 말씀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우리 학교는 한 학년에 한 학급이어서 학년이 올라가더라도 같은 아이들이 급우가 된다. 이제 새 학년이 될 텐데 영은이 부모님께서 생각이 달라지시지 않는 한 또 지난 학년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영은이 부모님은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꼭 참석하시기 때문에 그 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마음의 생각들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음을 느꼈다. 항상 영은이는 착하고 잘하는데 다른 아이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비록 영은이 부모님의 생각만은 아니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이와 별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학부모님들의 편견이 얼마나 자녀들을 고립되게 하는가?

우리 학급 열다섯 명의 어린이들 한 명 한 명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다. 이 귀한 생명들을 담임하고 있는 교사로서 언제 어디서 불쑥 튀어 나올지 모르는 어린이들의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린이들이 교사의 말 한마디에 절대로 상처를 받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학부모님들과 어떠한 일에 부딪히더라도 지혜롭게 그 순간을 이겨내고 인내심을 갖고 그들을 설득하며 나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이은실 가능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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