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 추억 (26)

2007.02.15 08:48:00

하루는 연수원 숙소에서 고산(孤山) 윤선도에 관한 글을 읽었다. 고산(孤山) 윤선도는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조 시가(詩歌)문학의 대가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윤선도의 뛰어난 문학기질을 말하고자 함도 아니고 그분의 대쪽 같은 성품을 말하고자 함은 더구나 아니다. 그분의 삶이 주는 의미 나에게 각별하기에 그분의 인생 발자취를 대강이나마 더듬어보면서 고귀한 삶을 추앙(推仰)하고 싶다.

고산은 서른 살에 시작된 귀양살이는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배소(유배지)에서 보낸 기간만 해도 20년이 된다고 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연수원에 온 지 2개월 겨우 지냈는데 그걸 못 참고 안달을 내다니! 아 부끄러워라. 20년의 기화요초(琪花瑤草) 어우러진 섬에서의 생활에서 얽어낸 것이 그의 시가(詩歌)문학이 아닌가?

어린 몸으로 급제하여 어주(御酒)까지 하사받았던 둘째아들의 죽음에 이어 귀양에서 돌아오던 마상(馬上)에서는 막내아들의 죽음마저 접하였다고 하니 그 슬픔 어디에다 비기리오. 그분은 막내아들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눈물보다 앞서 가슴이 부들부들 떨리고 두려웠다”고 썼을 정도였으니 그 고통이 어떠했겠는가?

그 동안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반갑게 맞이하여야 할 것인데, 아들도 하나가 아닌 둘을 잃어야만 했으니 그분의 기구한 삶 무엇에다 비기리오. 그러나,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아온 고산 윤선도의 삶이기에 그의 문학작품과 함께 길이 빛나리라. 아마 이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보길도(甫吉島)의 산과 바다, 돌과 물과 새, 기화요초(琪花瑤草) 등 때문이었으리라.

고산(孤山)은 한때 낙서재(樂書齋)에서 삶에 자족하여 이렇게 노래했다.

眼在靑山耳在琴/世間何事到吾心/滿腔浩氣無人識/一曲狂歌獨自吟/
보이는 것은 청산이요 들리는 것은 거문고 소린데/이 세상 무슨 일이 내 마음에 들겠는가/가슴에 가득찬 호기를 알아줄 사람도 없어/한 곡조 미친 노래를 혼자서 읊네./
이 노래에 두 글자-‘거문고(琴)’ 대신 ‘새(鳥)’를 넣고, ‘미친 노래(狂歌)’ 대신 ‘슬픈 노래(哀歌)’-를 바꾸어 나의 삶을 노래하려무나.
보이는 것은 청산이요 들리는 것은 새소린데/이 세상 무슨 일이 내 마음에 들겠는가/가슴에 가득찬 호기를 알아줄 사람도 없어/한 곡조 슬픈 노래를 혼자서 읊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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