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부상된 것도 모두 질적·양적으로 우수한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부족한 부존자원과 약소한 국력으로 인한 강대국들의 핍박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길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랜 체험을 통해 깨달은 선대들의 교육열이 높았기 때문이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지만 후손에 대한 교육열은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도, 빚더미에 허우적거려도 꺾일 줄 몰랐다.
그 결과 훌륭한 인재들이 양성되고, 농경문화는 최첨단 산업사회가 되어 선진국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과 국가의 교육정책과 교육자들의 교육수행과 학생들의 향학열이 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열악한 교육환경을 감당하면서 교육을 맡아왔던 교육자들의 공로도 과소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자들은 정치적 중립과 안정된 신분보장 속에서 학생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묵묵히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며칠 전에 지지체가 주관하는 아주 특별한 행사를 참관했다. ‘○○ 교육발전을 위한 시민 토론회’였다. 우선 성격상 교육청에서나 주관할만한 토론회라고 생각되었다. 공교롭게도 오전에는 지역교육청 주관 ‘○○교육 설명회’에 참석하여 지역교육청의 일년 동안의 교육계획을 들었었다.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지역교육청의 교육설명회에 참석한 그 날 시청의 대강당에서 열린 토론회가 교육발전을 위한 시민 토론회였다. 9명의 패널들이 지역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였다.
물론 지자체에서도 지역의 교육을 걱정하고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조성하여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으로 인한 지역인구의 유출을 막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교육에 관한 토론회는 교육전문가들이 몸담고 있는 교육부를 비롯한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다룰 사안인 것 같았다. 지자체가 교육기관들의 전문적이고도 고유한 기능을 훼손하는 처사인 것 같아 유쾌할 수만은 없었다.
요즘 지역교육청이나 단위학교들이 지자체에서 교육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아무리 좋은 교육환경 인프라나 교육프로그램도 재정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재정이 열악한 교육기관들은 어쩔 수 없이 행정기관에 지원을 요청하며 통사정을 한다. 지자체에서 교육지원금을 많이 유치하라는 교육부의 고육지책이 참으로 딱하기만 하다. 그렇게라도 하여 질 좋은 교육을 수행하려는 의지를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교육 주무부처의 예산타령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자치단체에서 교육관련 예산을 확보하라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주객이 전도되어가고 있다. 결국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자치단체장(정당인)에게 교육이 예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육을 교육전문가가 아닌 정치인이 좌지우지하게 될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교육기관장이 자치단체장의 눈치나 보면서 예산확보의 선처를 기대해야만 될까?
교육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 교육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가 교육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다 되어 있다. 십수년간 직접 학교에 다녔고 이십수년간 자녀교육을 해왔기에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을 전공하고 교육을 담당하면서 현장에서 오랫동안 교육활동을 해 온 교육자들보다 더 전문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치단체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해 오던 일반 공무원들에게 교육관련 예산권한을 준다는 것은 교육의 전문성을 지극히 폄하하는 처사임에 틀림없다. 결국 교육이 정치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환자는 의사에게만 맡겨져야 하듯이 교육은 교육전문가에게 맡겨져야 한다. 교육을 설계하고, 교육을 담당하고, 교육을 전개해야 할 사람은 교육자이어야 한다. 교육이 정치에 물들어서는 안 되고 교육이 경제논리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교육관련 예산은 교육관련 기관에 부여하여 교육전문성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교육의 성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고 교육은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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