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지고 있는 환화그룹 회장 아들의 폭력 사건의 비화가 사회에 하나씩 폭로되면서 한국 사회에 지성인의 모습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성인의 아들이라고 하여 특별한 자는 아니지만 자식에 대한 지나친 과보호의 현상은 학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생 통제 불능과 연계해서 생각하게 한다. 부모가 과보호로 기르는 자식은 궁극적으로 학교 생활에서 질서 의식을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듯하다. 꼭 학교 규칙을 지켜야 하느냐는 식의 학생들의 사고(思考)가 겉으로 표출될 때마다 교사의 마음을 아프게 할 따름이다.
지도층의 우월의식, 공존의식 부재
“유전무죄, 유전무죄”라는 소리 없는 어휘들이 항간을 떠돌게 하는 것도 한국 사회의 인습적인 사회 구조를 간접적으로 비꼬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양반 사회의 유습으로 전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우월 의식은 서양의 젠틀맨 의식과 평등 의식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격언이 서양의 평등 의식을 잘 대변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들 권위 의식은 서양과 비교해 볼 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회장이니까 나는 너보다 위에 있다는 사고 방식, 사장이니까 사원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사고 방식, 관리자니까 무조건 우월하다는 사고 방식 등등은 바로 한국 사회에서 의식 구조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요소인 것 같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 건너 밭에서 밭을 가는 농부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밭을 가는 농부의 아들을 가히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하다고 했다. 한화그룹의 회장이라고 하여 남의 귀한 아들에게 갖은 만행을 저질러 사회에 물의를 야기한 것은 참된 지성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바른 지성인은 바른 대우를 받게 돼 있다.
바른 지성인이 아니라면 바른 지성인의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남을 모함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수렁으로 빠뜨린다고 인간의 두 눈의 시야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나 사회의 다양한 눈은 피할 길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남을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범행을 저지를 경우에는 신상필벌의 죄가 반드시 뒤따르게 됨은 단순히 고대소설의 주제 권선징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림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샅샅이 찾아내어 추상같은 법리를 적용하여 변화를 모색하게끔 하야 한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부패 열쇠의 고리는 현 정부에서 대대적인 작업을 추진했다는 것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각계각층 할 것 없이, 특히 한국 사회의 좋은 직장이라고 여기는 곳을 과감하게 치고 나갔다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생각의 맑고 혼탁함은 결코 물질의 혼탁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질에 대한 부패는 물질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정신의 혼탁은 물건이 아무리 많아도 그리고 적어도 행해지는 법이다. 그러기에 정신의 혼탁은, 도덕적으로 바른 인간의 내면적인 성장에서부터 길러지는 교육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참된 교육은 참된 지성인을 만들어
21세기의 바람직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는 과연 무엇으로 대답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언뜻언뜻 들곤 한다. 세계를 내다보는 지혜의 눈을 가진 자인가 아니면 도덕적으로 건전한 인간인가? 그 결론을 내기가 참으로 어렵다. 민주적인 과정으로 일을 처리하고 자주적인 인간이 되는 데 항상 수양을 쌓는 바람직한 자세를 견지하고, 나아가서는 타인과 협동하여 원만한 인간 관계를 형성하여 나아가는 것도 그 중의 한 가지가 아닐까? 남을 시기하고 모함하여 개인적으로는 민사소송으로 상대를 헐뜯고, 형사소송으로는 타인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들의 행태는 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가끔은 필요한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