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는 5시 경에 1956년도에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아주셨던 양동기 선생님<광주광역시 사심>께서 전화를 해주셨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이시다.
교직에 몸담았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쳐 주신 스승님이시기에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쓴 적이 있다.
겨울철에 차가운 밥을 먹는 우리가 안타까워서 댁에서 따뜻한 물을 끓여다 주셨던 이야기는 기사화되기도 하였고, 이 기사가 [TV 동화 : 행복한 세상]에서 방영이 되기도 하였었다. 교육부 공모 [나의 스승님]에서 동상을 받게도 해주었던 이야기이다.
교장이 될 무렵에 교장으로서 지켜야할 주의사항을 일러주신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 [4대 째 이어지는 가르침]으로 나의 제자에게 주는 글이 되어 소개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가끔 우리 스승님은 참 특별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사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50년전에 우리에게 들려 주셨던 얘기들이 오늘날에 이슈<충무공 얘기>가 되고, 심지어는 네모난 수박과 대나무 등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대단하신 예견력을 가지셨거나, 남다른 아이디어를 가지셨던 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신다.
1956년 그 어려운 시기에 나의 6학년 어린 마음에 심어주신 선생님의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첫째. 이순신장군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치심은 50년이 지난 다음에 연속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이 되었다. 선생님은 어린 우리들에게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돌아가신 것은 싸움이 격렬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돌아가시려고 하셨던 것이다. 전장에서 지휘하는 장수가 갑옷을 입지 않고 최전선에 서서 지휘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일어날 당쟁의 회오리에 휩쓸리기 싫어서 전장에서 죽음을 택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스스로 부르신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았느냐 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가 그 사람의 공을 높이고 하고 낮추기도 한단다.”
하고 가르쳐 주셨었다. 이제는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이런 관점을 그 당시<50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둘째, 역사관과 같은 것이 아닌 실용적인 것으로 항아리 죽순과 네모난 대나무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대나무 죽순이 올라오고 있을 때에 깨어진 독그릇이나 항아리 같은 것을 죽순 위에 덮어씌우고 돌로 눌러 놓으면 항아리 가득 죽순이 차게 된다. 항아리를 깨면 죽순 한 개가 몇 배나 많은 먹는 죽순으로 자라있을 것이다. 또 죽순이 자랄 때 네모난 쇠 파이프를 씌워놓으면 자라면서 네모난 대나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호박이나 수박도 이렇게 틀을 씌워두면 네모난 수박이나 호박을 딸 수 있다.
어린 우리는 “에이 거짓말.” 이런 생각으로 들어 넘겼던 이야기이다. 그 시절에 다들 [참 엉뚱하신 분이다]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서 정말로 네모난 대나무가 나오고 네모난 수박이 나오지 않았는가?
50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요즘에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스승님은 참으로 특별하신 분이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그런데 정년퇴직을 하신지 20년이 다 되어 가시는 8순의 노 스승님께서 지금도 자신의 가문의 내력을 글로 남기기 위해서 자료실을 찾고 도서실을 찾으시면서 집필을 하시고 계시다. 동네 후배들을 독려하여 허송세월을 하지 못하게 이끌어 주시기도 하신다.
아직도 옛 제자에게 “자네처럼 열심히 사는 모습이 부럽네. 우리 주변에는 퇴직을 하고나서 놀기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많네. 나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네만은 자네처럼 하기가 쉽지 않네.”하시면서 자신이 만드는 책이 언제 완성이 될는지 걱정을 하시는 분이시다.
“자네 책을 받아보고 전화하네. 아직 다 읽어 보지는 않았네만, 초등학교 교원이었던 자네가 쓴 책이 어디 의사라고 이 만큼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싶었네. 언제 이런 것까지 연구하고 공부를 했었던가?” 하시면서 건강에 대한 생각을 말씀 하시고 몸소 실천해온 건강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가? 고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자네가 이렇게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남다른 노력을 하였는지는 안 봐도 훤하네. 그리고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를 이렇게 늘 잊지 않고 챙겨주는 것을 보면 자네는 남다른 사람이라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네. 이제는 자네의 사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네.”
하시는 은사님의 칭찬을 들으면서 더 이상 몸 둘 바를 몰라서 간신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나에게 특별하신 스승님은 지금도 아주 특별하게 나를 채찍질 해주시고 계신다.
감사합니다. 은사님, 존경하는 나의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