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먹기’ 변질 유감(遺憾)

2007.07.09 06:53:00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인 ‘나눠먹기’는 본래 좋은 뜻이었다. 아이를 낳았을 때 이웃에게 떡을 나누어 주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나누어 먹고, 설날에는 불우한 이웃과 가래떡을 나눠먹고. 누구는 말한다. 우리 미풍양속의 실상은 떡을 나누어먹은 것이 아니라 덕(德)을 나누어 가진 것이라고.

가난했던 유년시절의 추억 하나. 누룽지 간식이 고작이었다. 이것도 아무나 못 먹고 부잣집 아이들이 먹었다. 동네에 누룽지를 들고 나온 아이가 그렇게 부러웠다. 그것도 쌀밥 누룽지.그의 누룽지와 입만 쳐다본다. 침을 꿀꺽 삼켜가면서. 고소한 냄새에 먹고 싶어 창자는 요동을 친다. 차마 ‘한 입만’ 달라는 말은 못한다. 처분만 바랄 뿐이다. 드디어 아이는 덕을 베푼다. 자기가 먹던 누룽지의 일부분을 떼어 준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아이는 나눠먹은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변질된 ‘나눠먹기’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눠먹기’의 의미가 변질되었다. 편가르기로 재미를 본 일부 세력은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눈다. 그리고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협박(?)한다. 좌파 성향의 교과서는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기업의 목적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나아가 ‘가진 자’를 죄악시하여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먹는 것을 당당한 것인 양 가르치고 있다.

지난 달 26일, 청와대에서 나온 ‘기회균등할당전형’. 명칭은 그럴 듯하다. ‘못 사는 사람‘에게 배움의 기회를 균등하게 나누어 준다니 없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달콤한가? 이 제도의 목적이 "가난의 대물림을 방지하고 교육이 사회계층 이동의 실질적 통로가 되게 하는 것“이라니 얼핏 보면 좋은 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소요되는 연 2조원이라는 예산과 이 제도로 입학한 학생과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학생 간의 학력 차에 따른 부적응, 수도권 유명대학으로의 지원자 쏠림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도 지방대학의 고사(枯死)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탁상정책이었음을 뒤늦게 인정하고 있다.

‘가난은 국가도 구제 못 한다’는 말이 있다. 개인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강할 때 빛이 보이는 것이지 국가가 나선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또는 조세제도로, 국가재정으로 구제하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의 코드정책은 바로 억지로 '빼앗아먹기'

정부의 특목고 깔아뭉개기와 고교 등급제 불가(不可)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있는 자’가 더 이상 잘 나가는 것은 눈꼴사나워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닌지? 현실적으로 특목고가 우수하고 고교별 엄연한 등급이 존재하고 있는데 억지로 이를 무시하고 ‘손으로 햇빛 가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만 먹냐, 나도 먹자‘의 심보가 아닌지?

교육부가 강행하고 있는 무자격교장공모제는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장선출보직제의 하나라고 본다. 30년이 넘어 산전수전 겪으며 애써 취득한 교장자격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교육폭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 까짓 교장 자리가 무어 그리 대단한 자리라고 너희들만 차지하냐? 돌아가면서 해 먹자!”의 논리가 정부 정책에 먹혀들어간 것이라고 본다. 교육의 현장에 교육을 배제한 정치 이데올로기가가 끼어든 것이다.

5월 스승의 날, 표창도 씁쓸하기만 하다. 정부 포장에서부터 대통령, 교육부총리 표창이 나눠먹기라면 국민들은 믿을까? 물론 공적이 뚜렷하여 표창을 받았다면 박수칠 일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교육부는 각 시도에 인원을 할당하고 시도는 지역교육청에 인원을 배정하는 것이다.

각 학교에서 교육청에 표창 상신은 어떠한가? 교육에 공적을 쌓아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교사들은 교육부총리 표창 하나 정도는 이미 갖고 있다. 이미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 나눠먹기식으로 추천을 하다보니 장관표창 대상자가 점점 저경력자로 낮아지고 있다. 특별한 공적이 없어도 추천대상자가 되는 형편이다.

스승의 날 표창도 '나눠먹기'로 전락한 현실

더 가관인 것은 장관 표창이 이러다보니 교육감, 교육장 표창 대상자는 5년 이내나 신규교사까지 차례가 간다는 것이다. 이들도 교육에 열정을 바쳐 헌신하고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다면야 사기 진작면에서 도움이 되므로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학급운영, 생활지도가 엉망(?)이고 가르치는 것조차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민원의 대상이 되는 교사가 표창 대상자가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상(賞)의 희소 가치가 없어진지 오래고 학교에서 표창장 전수에 박수치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풍양속 ‘나눠먹기’의 변질이 안타깝다. ‘나눠먹기’는 ‘가진 자’가 먼저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거나 ‘없는 자’가 억지로 빼앗아서는 아니된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게 하고 그들이 덕을 베풀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용이 태어날 조건이 우선인데

심사숙고 하지 않은 교육 포퓰리즘이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교육부에 ‘교육’ ‘교육철학’ ‘교육소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바라기형 장관과 교육관료만이 있을 뿐이다. 진짜 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용이 태어날 조건을 갖추는 것이 우선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개천에서도 용이 나와야 한다’고 총장들을 모아 놓고 한 수 가르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이다.

잘못된 ‘나눠먹기‘를 좋아하는 그들. 혹시 말도 아니되는 '개천 균형발전(?)‘ 내지는 ’비룡(飛龍) 균등할당‘의 허상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용은 커다란 강이나 호수 또는 대양(大洋)에서 나와야 한다. 도랑은 도랑이고 개천은 개천일 뿐이다.

국민들은 정치권이 사탕발림으로 내놓는 '나눠먹기'의 기만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환상 내지는 착각에서 깨어나 있어야 한다. '나눠먹기'의 실상과 허상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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