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일찍 귀가할 시간이 많아져 우연히 TV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그 드라마가 “강남 엄마 따라잡기”였다. 몇 번을 보고 있자니, 이것은 교육의 풍자 드라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교육 바로잡기도 좋고, 교육에 열정도 좋다. 그러나 교육을 지나치게 풍자로 이끌어 냄으로써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개혁의 이미지를 주기보다는 이미 지나간 일들을 가지고 교육의 흠집내기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에 새로운 비전을 드라마를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라면 시청자로서 비판을 하지 않을 것이나 옥에 티 정도를 가지고 교육의 전반을 재조명 한다는 의미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어딘지 모르게 생각의 여지를 남기게 한다.
드라마는 신명나는 살풀이로 엮어져야
교육에 살이 끼었나 드라마조차도 무당의 살풀이 파노라마인지, 시청을 하고 있자니 흥미진진한 맛을 풍겨내는 것이 상업성을 노린 시청률 확보에 있지 않는지 자못 의심스럽다. 교육자가 드라마를 시청하는 입장과 학부모가 드라마를 시청하는 입장의 차이는 어떻게 다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교육자는 교육의 흠집내기에 화를 낼 것이고, 일반인은 교육자의 새로운 반성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찬성할 지 모른다.
“역사란 무엇인가” 저자 E. H. Carr는 역사는 사관(史官)이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역사적 사건이 다양하게 명명되어진다고 했다. 이처럼 교육 드라마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강남 엄마 따라잡기”라는 제목 자체가 우리 사회의 부가 교육의 핵을 좌우한다는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다. 이 드라마의 잘못이 공교육의 실종을 더욱 부채질하면서 사교육의 등장을 종용하는 듯한 느낌을 더욱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드라마 제작상의 오류로 비춰질 수 있다.
가뜩이나 교육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드라마에서조차 강남 학부모가 일류대학만을 고집하는 양상으로 비춰지고, 물질의 우월만이 일류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자녀를 둔 부모라면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요인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다수의 학부모들은 무엇보다도 교육부의 교육 정책을 탓할 것이다. 잘된 교육정책이라면 어떻게 다수의 학생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만을 고집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교육의 뒷면을 들여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깊은 수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 수렁의 늪을 지나지 않고서는 한국 교육의 새로운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늪을 건너는 길은 시간이 결정할 것이냐? 아니면 지혜의 여신이 해결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물리적인 여건이 해결할 것인가에 우문 아닌 우문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현대판 자본주의 교육이 물질에 의해서 좌우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렵다고 단정짓기보다는 물리적 여건에 따른 의식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한국 교육에는 절대 메시아가 필요하다
교육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수많은 변화를 모색해 왔지만 한국 교육에는 아직도 절대 메시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기에 한국 교육은 아직도 춘추전국시대의 군주들이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그래도 한 나라로 통일시키는 무력이라는 힘이 있었지만, 한국 교육에는 절대 군주가 나타나지 못하기에 그 통일이 어려운 상황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맑고 푸른 하늘에 지나가는 구름에게 물어나 보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