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의 기적, 이젠 여행으로

2008.01.11 14:12:00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위치한 만리포는 울창한 송림과 초록빛 비단 물결로 서해안의 나폴리라 불리는 곳이다. 만리포의 아름다운 해변은 인근 천리포와 백리포로 이어지며 당장이라도 귀빈을 맞으려는 듯 백사장은 온통 금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 포근하다.

만리포를 소재로 한 가요도 있다.「똑딱선 기적 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원로 가수 박경원이 부른 ‘만리포 사랑’의 첫 소절이다. 하늘과 바다의 조화로움을 간직한 만리포의 비경을 담은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천혜의 비경과 세인의 관심 속에서 큰 걱정거리없이 살아온 이곳 주민들에게 지난 해 12월 7일은 그야말로 악몽같은 날이었다. 유조선과 바지선이 충돌하여 원유 1만2547㎘가 거대한 폭포처럼 바다로 쏟아진 것이다. 검은 재앙은 순식간에 해안을 덮치고 어민들의 소박한 꿈과 일자리를 삼켜버렸다. 피해자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바닷가에서 음식점, 숙박업, 편의점 등을 운영하던 사람들도 날벼락을 맞았다.

사고가 발생한지 닷새쯤 지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일손을 보태기 위해 찾아간 바닷가는 그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백사장은 물론이고 해변 끝자락에 위치한 기암괴석까지 온통 기름 투성이었다. 도무지 복구할 엄두조차 나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이렇게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인간띠를 만들어 해변에 흩어진 기름을 수거했고, 헝겊과 옷가지를 들고 바위와 자갈을 닦았다. 몸을 아끼지 않고 방파제에 달라붙어 기름을 닦는 봉사자도 있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태안 주민들이 희망을 찾은 것은 정부의 지원책도 아니고 사고 당사자의 사법처리도 아니었다. 바로 내 가족의 일처럼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주말에는 태안 인구의 절반이 넘는 3만여명이 봉사자들이 태안의 해변을 사랑의 물결로 뒤덮었다. 지난해 태풍 나리로 사상 최악의 피해를 당한 제주도민과 13년전, 여수 앞바다를 검게 물들인 ‘씨프린스호’ 피해당사자들도 태안으로 달려왔다. 크리스마스 파티, 송년회, 시무식을 태안 해변에서 자원봉사로 대체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다녀간 사람만 7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외국의 언론들도 앞다퉈 ‘태안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새 해들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행지를 물색하다 마침 만리포가 떠올랐다.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꼭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지금의 모습이 궁금했다.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던 만리포는 적어도 겉으로는 원래의 모습을 회복한 듯 싶었다. 아직은 매케한 기름 냄새가 미열처럼 남아있었지만 백사장과 바닷물은 사고 이전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옛 모습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상당 부분 복원이 진행된 해수욕장보다는 아직 손길이 미치지 않은 외진 해변이나 섬 지역으로 간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빠져 나간 만리포 해변은 을씨년스러웠다. 예년 이맘때쯤이면 겨울 바다를 찾는 사람들로 분주했을 해변과 주변 상가는 검은 침묵이 휘감고 있었다. 혹시 찾아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위해 몇 몇 자영업자들이 간판을 켜 놓고 있었으나 늘어가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쓰러져가는 태안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자원 봉사도 필요하지만 관광객도 절실하다는 생각이 텅 빈 해변을 맴돌고 있었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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