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논술이 공교육에 던진 화두

2008.03.17 15:42:00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학교 현장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앞자리에 앉은 영어선생님은 영어몰입교육에 대비하기 위해 일찌감치 육 개월짜리 단기 연수를 떠났다. 대학입시를 목전에 둔 고3 학생들이나 담임교사들은 예년보다 한참 늦게 발표된 입시요강을 분석하느라 몹시 분주하다.

정권이 바뀌면 늘 그렇듯 사회 각 분야의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게 마련이고 특히 국민적 관심이 높은 교육 분야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라의 장래가 걸린 교육정책을 여론에 밀려 손바닥 뒤집듯 한다면 굳이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없다. 오랜 기간을 두고 교육전문가들이 고심끝에 만들어내 수능등급제가 시행 1년도 안되 중도 폐기된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대목이다.

올해부터는 수능이 등급과 함께 표준점수와 백분율이 제공된다. 단순히 두 가지 자료를 더 제공하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여기에는 학생들을 성적으로 획일화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물론 공급자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실력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말썽의 소지를 없앨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일선 고교에서도 서열화된 성적을 바탕으로 진로지도를 하면 훨씬 수월하고, 대학도 복잡한 전형 방법에서 벗어나 속편하게 점수나 석차를 활용하면 그만이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격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심각하게 고려해볼 사항이 있다. 수능의 변별력을 높이는 것이 과연 우리 교육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즉 수능은 과거 예비고사, 학력고사로 이어지는 국가 주도의 일제고사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일제고사의 특성인 객관식 시험은 교사중심의 강의식 수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해묵은 숙제인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고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교육과정의 파행은 더 말할 것 없다. 고3이 되면 멀쩡한 교과서는 제쳐놓고 문제풀이로 일관하는 관행도 그런 이유다. 사교육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분야도 바로 수능이다.

수능등급제 폐지로 인해 교육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업 혁명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논술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업부터 바꿔야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던 시점이라 안타까움이 더욱 크다.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토론을 하고 글을 써 보는 등 수업을 바꾸기 위해 애쓰시던 선생님들이 많았다. 특히 통합논술에 대비하기 위해 교과 간의 교류는 물론이고 협동 수업까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 시간 수업을 위해 여러 명의 교사가 밤늦게까지 연구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새정부의 수능 개선안에 따라 대다수의 대학들이 정시모집에서 논술을 폐지했다. 그러나 서울대는 지난 해와 다름없이 2009학년도 입시에서 인문․자연계 모두 논술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논술을 치르기 위해서는 출제에서부터 채점까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서울대가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논술을 유지한 것은 예산이 풍족하거나 국내 최고대학이라는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본질은 대학의 학생 선발 기능인데, 우수학생 유치에만 집착하지 않고 중등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지난 입시에서 서울대가 일부 사립대처럼 수능우수자 선발을 포기하고, 통합논술도 대부분 교과서를 중심으로 출제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대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논술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논술로 인해 일선 학교의 수업이 바뀌고 있으며 이것이 대학의 교육력 향상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도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은 대학만의 노력으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즉 초등부터 중등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력을 키워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가능하다. 2008학년도 새 학기를 맞은 교육 현장, 또다시 주입식․암기식 교육으로 돌아가고 있는 교실 풍경을 보면서 서울대 논술이 우리 교육에 던진 화두를 생각해 본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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