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서경아, 안녕? 지금쯤 마량초등학교 뒤뜰에도 아카시아 꽃향기가 넘치고 있겠지? 학교 앞 운동장까지 바다의 짠 냄새가 풍겨왔었지. 그 동안 부모님께서도 안녕하신 지 안부를 전해 드리렴. 떠나올 때 일일이 찾아뵙지 못하고 훌쩍 영암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와서 늘 미안했단다.
너의 사랑이 철철 넘치는 편지를 받은 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구나. 스승의 날이 한참 지난 5월 21일 경에야 받은 너의 편지를 보며 추억에 잠겼단다. 1학년 21명이었던 너희를 만나던 3월 첫날부터 나는 낑낑댔었지. 입학식 내내 돌아다니던 권영이를 잡으러 다녀야했고, 엄마를 부르며 3시간 이상 울던 선영이를 달래며 땀을 뻘뻘 흘리던 그 날이 생각나는구나. 개구쟁이 남자 아이들 몇 명이 날마다 서로 말싸움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 지지 않으려고 따지는 통에 우리 교실은 늘 시끌시끌했었지.
지금 생각해 보니 마치 동네 고양이들처럼 설 영역 표시를 하며 자기 틀을 벗어나는 우정의 싸움이었던 같구나. 특히 성질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면 얼굴까지 빨개지던 영민이에게 한 번도 지지 않으려고 대들던 목소리 큰 승현이, 성질이 급해서 울기부터 하던 원빈이 까지 합세하여 싸우면 우리 교실은 시장바닥처럼 떠들썩했었지. 그런 너희들이 행여나 싸우다 다칠까 봐 교실을 늘 지키느라 나는 화장실에 갈 틈조차 내지 못하곤 했었단다.
1학년은 밖에 나가 공부하는 기회가 많아야 하는데도 운동장에만 나가면 바닷가의 뻘게처럼 이리저리 달려버려서 함께 모으려면 참 힘들었단다. 5월 어느 날은 즐거운 생활 공부 시간에 달리기를 하려고 청백으로 나누어 팀을 만들어서 시합을 했었지? 그런데 한참 달리고 와서 땀이 난다며 승현이랑, 영찬이, 원빈이, 영민이가 웃통을 벗고 맨살을 드러내는 바람에 서경이 너랑 나리랑 여자 아이들이 얼굴을 가리고 웃던 일이 기억나니?
그렇게 개구쟁이였던 너희들이 아침독서 시간이면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소리 없이 책을 잘 읽어서 참 예뻤던 모습, 점심시간이면 21명 모두가 밥을 다 먹게 하는 일이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선생님 말을 듣고 잘 따르던 모습들이 생각나는구나. 벌써 3학년이 되어서 스승의 날, 단체로 쓴 편지를 보내왔을 때, 하마터면 울 뻔 하였단다. 우리 서경이는 늘 내 편이 되어주곤 했었지.
장래 희망이 선생님이었던 너를 `꼬마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참 좋아했지. 서경이는 착하고 예의 바른 세현이와 친척이면서 참 좋아하였지. 이 편지를 쓰다보니 광주로 전학 간 세현이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친구들 생일이면 앞에 나와서 눈을 감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을 추던 세현이 때문에 많이 웃었지? 편지를 쓰니 마량초등학교에서 지내던 생각이 나서 내 마음은 벌써 그 곳에 가 있구나.
사랑스런 서경아! 학예회 때 1학년 꼬마 아가씨들이 부채춤을 추기 위해 참 고생했지? 공연하던 날 무대 위에서 한복 치마에 발이 걸려서 벌러덩 넘어진 하늘이를 생각하면 다시 웃음이 나오는구나. 그런데 그 때는 참 황당했단다. 다행스럽게도 얼른 일어나서 다음 순서를 얼른 같이 하던 영리한 하늘이도 지금 쯤 무안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그리고 우리 1학년 모두가 예쁜 한복을 차려 입고 `강아지 똥`을 외우던 일, 이 달의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며 남자 여자 아이들이 서로 껴안던 모습도 눈에 선하구나.
선생님은 이 곳 영암 덕진에서 2학년을 가르치고 있단다. 너희들을 가르치던 때처럼 아침 독서, 날마다 일기 쓰기, 점심 골고루 잘 먹기 지도, 날마다 받아쓰기 지도를 하고 있단다. 이 곳 아이들은 숫자가 적어서 너희를 가르칠 때보다 힘은 덜 들지만 가난하거나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들이 힘들게 사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단다. 선생님이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부모와 같은 마음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이 바로 ‘선생님’이란다. 서경이는 마음씨도 착하고 정직할 뿐만 아니라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하여 숙제도 잘 하고 학급 일도 잘 도와주어서 고마웠단다.
우리 서경이가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구나. 지금도 그 때처럼 머리를 묶고 다니는지, 분홍색 실내화를 신고 다니는지. 궁금한 게 참 많단다. 가끔 너희 소식이 알고 싶어서 마량초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단다. 소식을 들어보니, 학교 도서실이 예쁘게 만들어지고 있다던데 참 좋겠구나. 좋은 책을 더 많이 즐겨 읽을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한다. 네가 편지에 쓴 것처럼 먼 후일, 서경이가 꼭 선생님이 되어서 나를 찾아온다는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선생님도 기도할게.
사랑스런 서경아! 권영이랑 다른 아이들 모두에게 선생님이 열심히 공부하고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란다고 꼭 말해 주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편지를 다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 주겠니? 날마다 선생님의 답장을 기다린다는 네 전화를 받고 선생님도 숙제를 하며 참 행복했단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답장해 준다고 말해 주렴.
오늘 나는 이 답장을 쓰는 동안 2년 전 마량으로 다시 돌아가서 너와 함께 숨쉬었던 교실 속으로 다시 가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단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서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어주자. 부모님께 효도하고 좋은 책 많이 보는 예쁜 서경이를 그리워하며. 안녕!
2008년 5월 31일
사랑스런 서경이를 그리워하며 1학년 때 담임 장옥순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