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각급 학교에서는 종업식이 끝나고 교직원 직무연수를 떠나는 것이 상례다. 바닷가를 찾는 경우는 바다를 학생으로 생각하며 수업을 연상할 것이고, 산을 찾는 경우는 산을 학생으로 생각하고 수업을 연상할 것이다. 바다와 산이 주는 오묘한 교수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관찰법인지 아니면 면접법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바닷가에서 느끼는 물의 고요함과 출렁거림은 바람의 발문으로 출렁거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거센 파도를 보면서 바다의 아름다움을 보기보다는 파도의 아름다움을 더 즐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거센 파도는 바람이라는 발문을 얼마나 예리하게 받느냐에 따라 높이가 달라진다. 바람이라는 교사가 파도라는 학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교사의 발문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하게 되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소슬바람에 일어나는 바닷가의 잔 물결에는 그 누구나 크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는 파도가 점차 높아질수록 파고에 대한 경계는 바다에 대한 경계로 확대된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잠을 자는 경우는 파도가 없는 바다를 보는 것과 같다. 나무가 없는 민둥산에서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없는 것처럼 교실에서 학생이 잠을 자는데 교사가 수업을 전개하는 데서 학업의 성취도를 이루어낼 수 없다. 면접법에서는 일대 일의 관계에서 대화가 진행된다. 그 매체는 언어다. 언어를 통한 대화에서는 심리적 치료효과를 자아내기 때문에 마음의 정화작용까지 하게 된다. 면접법으로 학생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면 학생이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지 않으면서 학원간다고 자주 나가면서 실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은 학생의 마음에 학원이라는 자체가 위안을 주는 효과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병원에 가면 치료를 하지도 않았는데 좀 좋아지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굿의 달인인 무당도 수업에 달인도 교사도 모두가 대상에 대한 마음을 읽어내는 관찰법과 면접법을 내면의 배경지식으로 쌓아 두어야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바로 지도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