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번 새 학기에 이제 막 50이 된 교장선생님이 온다고 학교가 술렁거렸다. 젊은(?) 교장이라며 기대가 컸다. 오기 전부터 교장선생님의 나이는 물론 학력까지 공개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이력도 여기저기서 입소문으로 떠돌고 있었다.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쓸 데 없는 소문도 많이 돌았다. ‘교장으로 만족할 분이 아니다. 나중에 큰일을 하실 분이다.’라며 소문이 무성했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교장의 자리에 이른 것은 맞다. 젊기 때문에 학교도 활기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젊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나는 이번 일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마음을 담아보았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인색함을 보인다. 물론 나이를 먹게 되면, 젊은 사람들에 비해서 활동적이지 못하다. 정열적인 일에 대한 의욕이 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리적 특징은 오히려 존중받아야 할 몫이 아닌가. 젊음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대 받고 예찬 받듯이, 늙은 사람들도 험난한 세월의 산을 올라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존경받아야 한다. 서양 속담에도 ‘미모는 피부의 한 꺼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늙었다는 것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적인 현상일 뿐이다.
옛날에는 머리끝이 희끗희끗해지면 어른 대접을 받고, 나이 때문에 인품까지 존경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군제대후 대학 복학 때였다. 그때 철이 들었는지 어른의 말씀에 귀를 열기를 좋아했다. 선생님들의 모습은 내 삶의 거울이었다. 그분들의 연세는 정확히 몰랐지만, 내 아버지보다는 더 지긋하신 선생님들의 모습은 큰 산 같았다. 세월이 내려앉은 흰 머리카락은 선생님 학문의 세계만큼이나 경이롭고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난 지금도 어른을 좋아한다. 모임에 가거나, 혹은 회식 등을 하며 여흥을 즐길 때도 슬그머니 어른 옆에 가서 앉는다. 그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주워듣는 것이 많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당신의 살아온 이야기는 내 삶을 더욱 뜨겁게 한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바위처럼 살아오신 이야기, 아니 강직해서 너무나 강직해서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았을 것 같았던 분도 오히려 수없이 태풍에 어린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거목이 된 것처럼, 자신의 내밀한 아픔을 들려주신다. 온갖 풍파를 견디고 살아오신 어른들은 말씀도 온화하다. 생각하시는 것도 논리적이고 깊은 데가 있어서, 산중에서 마시는 약수처럼 느껴진다.
나란 위인도 나이를 먹으면서 제법 좋아지는 느낌이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는 눈이 제법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아이들의 못된 것만 보았는데, 지금은 아이들의 장점이 보인다. 그전에는 아이들에게 꾸중만 했다. 아이들에게 원망의 눈빛만 키웠다. 이제는 아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는 말을 건네고 있다.
우리가 생각을 고쳐 봐야 할 것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다. 이는 늙는 것이라기보다는 꿈과 이상이 없을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라는 시에서 말한 것처럼,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세월은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무턱대고 겉모습이 젊다고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도 잘못이지만, 반대로 나이가 많다고 그가 지닌 능력과 열정을 폄하하는 것도 잘못이다. 나이는 우리가 건너 뛸 수 없는 삶의 이력이다. 또 한편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고 미래이다. 지금 품고 있는 생각, 그리고 훗날에 대한 열정이 우리를 젊게 한다. 모습이 아무리 젊다 해도 막 길어 올린 샘물 같은 생각의 신선함이 없다면 젊음이라 할 수 없다. 새해 태양이 떠오르면 우리는 또 한 살의 나이를 먹어야 한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아쉬워하고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진화한다는 뜻이다. 거목이 세월에 더욱 빛나듯 인생도 나이에 걸맞은 연륜이 있어야 한다. 나이와 함께 스스로 빛나는 인생을 디자인해야 한다. 새해 태양을 맞이하며 마음속에 다음 시를 읊조려 보라. 나이를 먹어도 자신감이 용솟음친다.
청춘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마음가짐을 뜻하나니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