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회장님, 후보자님 등 여러 직함이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가장 친근한 것 같아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날씨가 덥다 못해 푹푹 찐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은 수능 모의평가가 치러지는 날입니다. 더운 날씨지만 시험을 치르는 고3 학생들은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불과 일주일전 치러진 선거 패배의 아픔이 아직 채 가지지 않았겠지요. 선생님뿐만 아니라 캠프 식구들도 많이 아쉬워하겠지요. 아마도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이긴다는 마음으로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나름대로 대책도 세우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캠프 내에서 분석한 패배의 원인이 궁금하네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큰일을 겪고 나서 잘못되면 대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괜한 노파심을 부려봅니다.
패배의 원인이 참 중요할텐데요. 혹시 이렇게 분석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막판에 몇 가지 더 양보하고 보수 후보 중 한 사람과 단일화만 이뤘더라도 승리는 따논 당상이었을텐데….’
물론 그렇게 분석하는 것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일단 선거에 지고나면 상황보다는 결과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만약에 그런 분석이 나왔다면 저는 생각을 좀 달리 하고 싶어요.
선생님께서는 곽노현 당선자에 불과 1.12%, 즉 5만표도 안 되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유권자 수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깻잎 한 장 차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클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깻잎 한 장 차이로 선생님이 이겼어도 저는 승리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먼 발치에서 오랫동안 선생님을 지켜본 동료이자 후배로서는 선생님이 적어도 20% 차이 정도로는 이겼어야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평교사에서 시작하여 EBS 스타강사로 오랫동안 이름을 날리셨기에 아마도 40세 전후의 세대들은 대부분 선생님 강의를 듣고 공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도 선생님을 알아보는 중년의 유권자들이 많았을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선생님께서는 당시 고교생들에게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과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분이었기에 선생님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 정도의 명성이라면 사교육 업체에서 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고 또 어쩌면 평생 교사로서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을 손에 넣을 기회도 있었을 텐데 왜 떠나지 않으시나 하는 어리석은 궁금증을 품어보기도 했습니다. 평소 EBS에서 쥐꼬리만한 명성이라도 얻으면 금세 공교육을 박차고 사교육으로 달려가는 교사들을 숱하게 많이 보았던 터이기에 선생님의 모습은 새롭고 신선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야말로 공교육의 국가대표라고 믿어왔고 특히 교육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교총회장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보면서 더욱 그 믿음은 더욱 큰 확신으로 남았습니다.
선생님의 교총 회장 당선은 많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선 교총 60년 역사상 최초의 평교사 출신 회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간 18만 교총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회장 자리는 사실상 보수적 인사들의 잔치마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유신독재에 맞서 ‘민청학력 사건’으로 옥고까지 치른 선생님의 당선은 교총의 체질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회장 역할을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잘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교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정부 청사 앞에서 머리띠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교총 회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으로 신규 회원들도 꾸준히 늘어 회원 수도 20만에 육박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그간 전교조에 비해 교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일정 정도 불식시켰다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잘 하시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직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는 ‘이원희 교총회장, 서울교육감 출마 위해 교총회장 사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수장이 떠나버린 교총은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동력을 잃은 채 방향을 잡지 못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공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더 좋은 자리에 가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책임질 교육 수장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아쉬운 점은 교총 회장을 시작할 때 혹시 선생님께서 애정을 갖고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식보다는 일종의 목적지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었나 싶어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가능하면 임기를 채우고 나섰더라면 훨씬 모양새가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난 5월 말인 것 같습니다. 대입제도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서울로 출장을 간 일이 떠오릅니다. 서울 시내로 접어들자 후끈하게 달아오른 선거 열기를 느낄 수 있었지요. 길거리에는 수많은 현수막이 후보자들의 약속을 담아 나부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마다 유세가 한창이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현수막이 스쳐가는데 갑자기 선생님의 현수막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문구를 보니 갑자기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습니다. 선생님의 이름 앞에는 ‘부적격 교원 10% 퇴출’이라고 쓴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있었습니다. 제가 서울 사람이었다면 매일 보는 현수막이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쳤겠지요. 아니 교육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현수막에 적힌 ‘부적격 교원’이란 누구를 의미할까? 물론 ‘금품 수수, 성추행, 폭력, 성적조작 등’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의미보다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실력없는 교사’로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표를 가진 서울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무런 설명 없이 ‘부적격 교원’이라고 했을 때, 결국 ‘실력 없는 교사’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맞을 겁니다.
저는 선생님이 스타강사 출신이라 혹시 현장에 있을 때 실력이 미처 따라주지 못한 동료 선생님이 더러 있었을 것이고 이런 분들이 공교육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 않았나 싶어 저 나름대로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헛된 상상으로 그치길 바랄 뿐이고요.
혹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적격 교원’이 ‘금품 수수, 성추행, 폭력, 성적조작 등’이라면 이런 분들은 사안의 경중에 비춰 지금도 사법적 판단을 받고 있고 결과에 따라서는 교단을 떠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셨겠지요. 그렇다면 앞뒤가 안 맞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분보다는 ‘부적격 교원 10%’의 의미는 ‘실력없는 교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력이 있다, 없다’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요.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교사들의 실력은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도 안 됩니다. 현재 교단에 서려면, 그것도 서울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으실 정도라면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무척 잘했을 거고 또 대학에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적어도 지식의 질적 차이로는 실력의 정도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실력 차이는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교수법의 차이라고 보는데 내성적인 선생님은 가르치는 방법이 다소 딱딱하고 그래서 학생들의 호응이 떨어질 수 있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외향적인 선생님은 실력 외의 요인으로 아이들에게 호응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사람이 가진 자연적인 성품의 문제로 실력으로 연결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퇴출’이란 말에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퇴출’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어감이 공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퇴출’이라는 말은 쉽게 쓸 수 없고 뭔가 큰 문제가 있을 때 아주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퇴출’은 학교에서 말하면 ‘퇴학’이나 다름없습니다. 선생님이기 이전에 직장인으로서 만약 ‘퇴출’ 대상이 된다면 이는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그를 믿고 따랐던 가족들에게도 엄청남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퇴학’을 시키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아이를 교화해서 학교에 다니도록 합니다. 섣부른 ‘퇴학’은 아이는 물론이고 가족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학생들은 많은 실수를 하고 때로는 본분에서 어긋나기도 하지만 사회처럼 법으로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습니다. 실수가 있더라도 용서하고 또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교육입니다. ‘퇴출’은 듣기도 거북하고 적어도 교육 현장에서만큼은 사용해서도 안 되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교직사회는 말 그대로 ‘죽을 맛’입니다. 교사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에 와있고 이제는 마치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것 마냥 시도 때도 없이 난타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교사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러니 교직단체만 믿고 의사를 대변해주기 바랄 뿐이지요.
사실 요즘 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무척 버겁습니다. 무슨 말만해도 대꾸하는 아이들이 있고 손만 들어도 신고한다고 엄포를 놓는 아이도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조는 아이를 깨우면 눈을 부라리는 것쯤은 이젠 평범한 일상사입니다. 게다가 교사들에게 교원평가제로 족쇄를 채워놨으니 어느 누가 아이들에게 쓴 소리를 하겠습니까.
교육현장에 질서가 없어지고 예절이 사라진 건 오래된 일입니다. 교사는 교과 수업만 잘하고 아이들 인성은 포기해도 됩니까?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교육이 바로서는 것 아닐까요? ‘10% 퇴출’이라고 했는데, ‘10%’는 누구나 다 알듯이 열 명 중의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50명 있는 학교에서는 5명이 퇴출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 계산이고 어떤 학교는 50명 중 10명이 퇴출될 수도 있고 어떤 학교는 한 명도 퇴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수치를 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퇴출해야할 사람이 20%라면 10%는 퇴출하고 10%는 남겨두겠다는 건지요. 그리고 퇴출할 사람을 골라보니 5%밖에 안 되는데 그러면 나머지 5%는 어떻게 채울건지 그 기준이 궁금합니다. 수치를 정하는 것은 겉으로는 분명해 보일 수 있어도 자칫 잘못하면 역으로 함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맨 처음 말씀드렸던 내용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짚어 보겠습니다. 물론 가상이고요. 1% 남짓한 그야말로 깻잎 한 장 차이로 승부가 갈렸는데 아마도 5만명이 훨씬 넘을 서울시 교원들이 누구에게 투표를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선생님을 한없는 애정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막상 투표장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을 찍었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제 삼자의 입자에서 제 마음이 이럴진대 서울시의 교원들은 어땠을까요? 혹시 누구보다도 교사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을 이원희 후보에게 실망했을 분들도 꽤 될 터이고 그렇다면 그분들의 표가 어디로 갔는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런 추측이 사실이라면 선생님께서는 결국 교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패했다는 가정도 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이나 캠프 관계자들은 시민들의 표가 월등하게 많으니 그쪽에 치중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도 교사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내 자식 교육이 중요하다지만 가르치는 선생님도 가정이 있을 터인데 이분들을 매정하게 내친다면 이것이야말로 비교육적이라고 판단한 분들이 왜 없겠습니까?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장왕의 고사가 생각납니다. 장왕이 어느 날 밤 신하들을 모아놓고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바로 그때 등불이 꺼지더니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누군가가 그녀의 가슴을 더듬고 희롱한 것이지요. 그녀가 쥐고 있는 갓끈의 임자만 밝혀내면 극형에 처해질 범인이 드러나겠지만 왕은 없었던 일로 마무리했습니다. 몇 년 후 진나라와 국운을 건 전쟁이 벌어졌을 때 목숨을 걸고 앞에 나서 싸우는 장수가 있어 불리한 전세를 뒤집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장수는 다름 아닌 주연에서 임금의 애첩에게 갓끈을 빼앗긴 신하였습니다.
장왕의 고사는 리더의 자질에 대하여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리더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심지어 큰 죄를 저질렀어도 함부로 내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할 인재는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겠지요. 리더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면 자신과 국가를 위해 온 몸을 던져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간혹 실수를 하더라도 상처받은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 선거 패배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괜한 말을 꺼내 상처를 덧나게 하지는 않았나 싶어 괜한 후회가 앞섭니다. 선생님을 위해 한 표도 보태주지 못한 처지에 감히 이런 말을 꺼냈다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텔레비전을 통해 개표 결과가 나올 때도 제가 몸담고 있는 충남보다 서울의 상황이 더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선생님이 당선되기를 빌었습니다. 선생님은 서울 교육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분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민심은 냉엄했고 그 결과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았습니다.
주제넘은 말씀이 너무 길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 부탁드릴 말씀은 이번 선거가 앞만 보고 달려온 선생님께는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어 긴 안목으로 보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4년 후가 더 기다려지기도 하고요. 다음 선거에 나오실 때는 선생님으로 인하여 많은 교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현수막에서 ‘선생님은 서울 교육의 힘, 이원희’라는 문구를 보았으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