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제자, 경숙이에게
계절은 벌써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6월 초순이구나. 바쁜 업무 속에서도 잊지 않고 옛 선생을 찾아주는 너의 정성에 감동하여 5월을 보내곤 했지. 올해도 어김없이 행정실에서 보내는 메신저의 주인공은 바로 너였구나.
"장옥순 선생님, 퇴근하실 때 여수에서 제자가 보낸 돌산 갓김치를 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맛있겠습니다. 부럽습니다!."
"글쎄요. 해 준 것도 별로 없는데 매년 챙기는 제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답니다. 잘 기른 제자 하나, 두 자식 부럽지 않네요. "
금년 스승의 날도 네 덕분에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지. 설날부터 시작해서, 내 생일, 스승의 날, 추석, 크리스마스까지 다 챙기는 제자는 흔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단다. 그것도 몇 년째 같은 마음을 담아서 보내는 너를 세상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구나.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제자 자랑은 드러내놓아도 괜찮겠지?"
이제는 내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투정을 부리게 되었구나.
"경숙아, 네 마음이 정말 고맙고 감동을 주는구나. 나도 이젠 받기만 할 게 아니라 갚아야 할 생각을 하니, 부디 그 마음만으로도 분에 넘친단다. 올 여름방학에 꼭 여수에 내려가서 너에게 맛있는 것 많이 사 주면서 몸보신 시켜주고 싶구나. 이건 나와 남편의 같은 생각이란다."
"아니에요, 선생님! 제 행복을 막지 말아주세요. 생각해 드리고 싶은 선생님이 계신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랍니다. 그러니 제발 제 행복을 막지 마세요. 더 잘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한 걸요."
이쯤 되면 네가 보여주는 사랑은 제자를 넘어서서 마치 친정 엄마 같은, 보살핌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 같지 않니? 건강하시라고 보내주는 건강 식품, 예쁘게 입으시라며 보내준 명품 속옷, 글을 쓸 때 아프지 말라고 보낸 천연 방석이며 베개, 김치 담그기 힘드실 거라며 보내주는 김치도 모자라서 명절마다 배달되는 최고급 과일 등등 다 세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구나.
아마도 너는 내 제자라기보다 친정 엄마 같단다. 친정 엄마를 어린 시절 일찍 잃고 허전한 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도록 친정 엄마가 보낸 천사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이젠 늙어가나보다.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선생으로서 그리 나쁘게 살지는 않았다는 작은 자부심을 안겨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단다.
100년 앞을 보려면 제자를 기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실감하며 산단다. 너의 사랑이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내리막길을 향해 가며 인생의 황혼을 붉게 물들이고 싶은 내 마음의 불을 당겨주고 있음을 아니? 제자들에게 더 잘해 주고 싶고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채찍을 들게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너는 정말 대단한 제자였지. 1983년 그 시절 6학년 아이들에겐 낭만이란 없었지. 40명에 가까운 콩나물 교실에서 수학여행도, 체험학습도 없었던 시절, 다달이 치르는 9과목 학력 평가의 성적을 올리는 게 지상 과제였던 우리들이었으니까. 모든 지향점이 오로지 성적 향상의 정점을 향했으니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들도 시험 성적 향상이 주를 이루어서 너희들과 즐겁게 살거나 행복했던 추억은 별반 없구나.
생각나는 게 있다면 우리 반이 연구수업을 할 때였어. 나는 음악 수업을 좋아해서 수업 공개도 음악으로 했었지. 너희들에게 음악 시간마다 배운 노래를 계명창으로 외우게 했고 한 대뿐인 교실 오르간을 가지고 외운 계이름으로 수행평가를 하곤 했지. 다른 아이들보다 음악적 감각이 뛰어난 너는 왼손 반주법까지 내게 배워서 배운 노래는 오르간 연주가 가능할 만큼 열심히 하는 제자였어.
그 덕분에 음악수업을 공개하면서 네가 오르간 반주를 하고 친구들은 노래를 불렀지. 나는 지휘를 했을 것이고, 초등학교만 졸업하여도 간단한 피아노 연주는 할 수 있다며 부지런히 오르간을 치게 했던 것이 생각나는구나.
그것뿐이 아니지. 너와 나의 인연은 퇴근 후가 더 즐거웠어. 학교 뒷마을 백년 부락 자취방에 생쥐처럼 드나들던 네 친구들 말이다. 이삐라 불렀던 창근이을 비롯해서 영철이, 병우, 연우, 병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잊히지 않고 생각나는구나.
철없던 우리들은 한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놀았었지.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부침개를 해먹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겨울 밤을 보냈지. 지금 생각해도 행복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구나. 나중에는 며칠씩 머무는 영철이 때문에 영철이 어머니께서 김치와 쌀까지 보냈던 것을 기억하니? 영철이는 병우를 따돌리려고 집에 가는 척 하다가 다시 내게로 오곤 했으니 말이다.
참 즐거운 추억이구나. 28년이 넘은 이야기가 어제 일처럼 또렷한 것을 보니 우리들이 나눈 사랑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어. 한솥밥을 먹은 시간만큼 정이 들었고 어떤 문제 거리도 대화로 다 해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
우리들의 만남은 그 뒤로도 이어졌지. 네 선배들과 친구들의 주례를 맡게 되면서 고흥까지 가서 재회하던 기쁨도 눈 앞에 생생하구나. 너의 모교는 사라졌지만 우리 가슴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고흥남초등학교의 그 교실과 그 시절 풍경들은 아직도 선명하기만 하니 말이다.
그뿐이 아니지. 겨울방학이면 나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몇 통씩이나 긴 편지를 보내던 너의 사랑스럽고 고운 필체를 기억한단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어김없이 편지를 보내던 네 정성을 나는 결코 잊은 적이 없어.
사랑하는 경숙아!
이제는 너도 여수시청의 어엿한 중견 간부이면서 두 자녀의 어머니로서 인생의 중반을 향해 열정을 불사르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정말 이제는 내 제자라기보다는 인생의 도반이 되어 내 곁에 자리하고 있는 네 모습을 본단다. 내 의식 깊숙이 찾아와서 함께 살고 있으니 너와 나는 결코 멀리 있지 않은 거지.
G.아궤예스는 <생명을 주는 사랑>이라는 책을 통해 참 아름다운 말을 전해주는데 바로 너를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해서 여기에 옮겨본다.
"함께 있는 두 사람 사이를 가장 멀리 느끼게 하는 것은 사랑의 결핍이다. 떨어져 있는 두 사람 사이를 가장 가깝게 느끼게 하는 것은 사랑의 유대다."
교직 30년 동안 길러낸 제자들이 천 명을 넘었지만 내 열 손가락 중에서 엄지 손가락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자는 바로 그대, 나경숙 씨라는 걸 이번만은 꼭 말해주고 싶었단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신이 허락하신다면, 그리고 네가 허락한다면 너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시를 나눠 읽으며 인생의 도반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단다.
제발 금년이 다 가기 전에, 겨울방학 때라도 너를 만나 그간의 고마움에 보답하는 시간을 계획 중이니 아무런 부담없이 진심으로 받아주기를 바란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들 하지만 네가 보여준 사랑은 치사랑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너는 아마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직장에서도 그리할 거라 믿으니 더워지는 마음에 감사함이 들어차는구나. 공부도 잘했으면서도 하나뿐인 동생의 진로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 전선으로 뛰어들어 열심히 살아온 너에게 보답하듯 동생도 훌륭하게 성장하여 좋은 대학에 연구 교수로 합격했다니 참 잘된 일이구나.
사랑하는 제자, 경숙아!
따스한 마음으로 가정과 직장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공직자의 자세를 간작하면서도 늘 겸손하고 단아한 네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장하다. 그야말로 너를 보며 청출어람의 기쁨을 누린단다. 나는 하나밖에 가르치지 않았는데 너는 열을 실천하며 사는 모습을 보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금 들여다 보게 되니, 이젠 네가 나를 가르치는구나.
아무쪼록 힘든 업무와 어머니 역할에 가정주부의 일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하고 건강도 챙기렴. 무엇보다 네가 좋아하던 글쓰기도 살려서 좋은 책의 저자로 만나고 싶은 내 희망사항도 새겨주렴.
네 얼굴을 보며 눈맞춤하며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글로나마 내 마음을 전하니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빈다. 사랑스런 아들과 너의 남편, 그리고 친정 어머님, 그리고 자랑스런 동생 경수에게도 마음으로부터 안부를 전한다.
2011년 6월 7일
강진에서 변함 없는 너의 사랑에 감사하는 옛 선생, 장옥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