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단체나 교원단체들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교과부와 각 시도교육청과 교섭을 하도록 되어있다. 이 중에서 교원노조와 교과부 또는 각 시도교육청의 의무교섭 사항은 대체로 교원들의 근무여건이나 보수, 복지 등이다. 반면에 교육정책, 인사, 교육과정, 교육기관의 관리 운영은 교섭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교원노조들은 의무교섭사항 외에도 나머지 부분에서 교섭을 요구하고 있고 실제로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은 교섭대상이 아닌 분야도 교섭에 임하고 있다. 교섭에 임할 뿐 아니라 기본에서 어긋나는 교섭사항에 합의를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교원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체결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이라 해도 법에서 허용된 부분만 교섭대상으로 해야 하지만 이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뿐 아니라 최근에 단체협약을 체결한 전북교육청도 비슷한 경우에 해당된다.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수장으로 있는 시도교육청에서 교과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꼴이 된 것이다. 단체협약체결 내용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위법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은 교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는커녕 의욕을 상실시키고 실망감만 증폭시킬 것이다. 단체협약체결이 이루어진 부분이 정말로 대부분의 교원들이 원하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교원노조 집행부의 의견이 전체의 의견으로 변화되었을 수도 있다. 교원노조에 소속된 교원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지 의견을 물었을 수도 있지만 나머지 교원들은 그러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의 내용 중 눈에 띠는 부분은 학교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초·중등 학습지도안을 별도의 결재없이 자율적으로 작성·활용한다는 부분과, 출퇴근시간 기록부도 ‘교원의 업무부담 경감’ 차원에서 폐지하기로 한 부분이다. 학습지도안이 결재없이 작성되고 활용된다면 교장은 최소한의 관리마저도 어렵게 되는 것이다.
교원의 복무는 단위학교별로 학교장의 책임 하에 관리되어야 함에도 출퇴근시간 기록부가 폐지됨으로써 학교장은 어느 교사가 어느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길이 없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사실 서울시교육청 관내 대부분의 학교들은 이미 학습지도안 자체를 별도의 과정을 거쳐 결재를 받지 않고 있다. 진도표나 학습계획표 정도를 결재받고 있는 학교들이 있지만 이마저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생략하고 있다. 또한 출퇴근시간 기록부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물론 사라진 이유는 당연히 교원노조와 서울시교육청의 단체협약체결 때문이었다. 2009년도에 단체협약체결이 무효화 되었지만 학습지도안 결재와 출퇴근시간 기록부가 부활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이미 학교에서 거의 사라진 출퇴근 기록부나 학습지도안 결재에 관한 사항을 굳이 단체협약체결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게된다. 어쩌면 그만큼 교원노조의 노력으로 이런 부분에서 교사들의 이익을 가져왔다라는 것과 학교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기 위해 또다시 교섭안건으로 택했다는 것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즉, 이를 토대로 앞으로 여러가지 학교장의 권한에 도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교원노조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전교조에서 주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서울시내에서 전교조가입 교사 수가 나머지 교원노조 가입 교사 수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전교조를 제외한 나머지 교원노조원들은 전교조에 비해 5%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전교조의 주장이 절대적인 것이다. 나머지 교원노조의 협조가 없더라도 전교조 단독으로 학교현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전교조는 학교에서 학교장의 권한축소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가령 출퇴근 기록부가 폐지된 이후에 학교장이 다른 방법으로 교사들의 출·퇴근을 파악하면 교권침해나 인권침해라는 명분으로 학교장과 대립해 왔다. 학교장이 어떤 사업을 추진할 때도 교사들의 의견수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반대하고, 의견수렴을 거쳤다면 제대로 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았다는 논리로 반대를 해왔다. 시범학교나 선도학교 운영은 일부교사들의 승진점수 따기 외에는 효과가 없다면서 반대를 해왔다.
그러나 학교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 교원노조 설립의 취지는 아니다. 교과부나 시 도교육청과 단체교섭을 통해 교원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복지 후생 등을 확충하는 것이 교워노조 설립취지인 것이다. 방향이 빗나가면서 교원들간의 갈등을 부추겼고, 이로인해 학교는 필요 이상의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이번의 서울시교육청과 교원노조간의 단체협약체결에 따라 또다시 학교가 긴장과 갈등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물론 교원노조가 서울시교육청과 어렵게 단체교섭체결을 했을 것이다. 쉽게 해결된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는 이유도 헤아려야 한다. 예전 같으면 교육현장의 변화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을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교장들까지도 전교조의 노력에 동의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단체협약체결 내용이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절실한 내용들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만큼 교섭안건들이 현장과 다소 괴리가 있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현장에서 학교장은 전교조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학교장 때문에 민주적인 학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전교조의 단골 메뉴였다. 어떻게 하든지 학교장의 권한을 축소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면서도 내부형교장공모제추진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학교장에게 화살을 돌리면서도 내부형교장공모제를 통해 교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장이 문제가 많아서 전교조가 모두 학교장을 해서 학교를 바로 잡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틀을 깨고 비정상적으로 학교장이 되겠다는 것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교육청의 장학사들을 망학사나 잡무사로 폄하하면서 그들도 전문직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전문직에 진출하고 있다. 이 부분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자신들이 교육전문직에 진출해서 교육청을 바로 잡아 놓았는가. 동의하기 어렵다. 앞으로 전교조 출신의 교장들이 많이 학교현장에 진출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학교교육이 혁신적으로 변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의 교장들에 비해 상당히 변화된 교장들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학습부담에서 해방시키는 날도 올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교장과 교사들의 또다른 갈등도 예측된다. 과연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학교장과 교사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학교를 이끌어갈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