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46)

2011.07.25 09:39:00

얄미운 선생님

“어? 이거 큰 일 났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왜 이렇게 숙제를 안한 사람이 많지?”

선생님은 아이들을 주욱 훑어보시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십니다. 어제 국어 시간에 내어주었던 '우리 동네에서 쓰는 말들 조사'라는 숙제는 부모님들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크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그냥 오게 된 것은 모두들 엊저녁에 TV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를 보느라고 그만 늦장을 부리다가 숙제를 안 해 가지고 온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이 있었구나. 그렇지?”

선생님은 이미 우리들이 왜 숙제를 안 해 왔는지를 다 아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래? 재미있는 만화영화를 보느라고 그랬단 말이지? 맞지? 그럼 어제 저녁엔 신나게 놀았으니 이제 자기 잘못을 반성해 보아야겠는데?”
“예.”

우리들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자 선생님은 “자, 그럼 준비해보시지요. 이 많은 사람을 때리려면 선생님도 손목이 아프겠는데 스스로 반성을 해보기로 합시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말썽꾸러기 정수가 “에이 재수 없어. 왜 다들 안 해 가지고 와서 이렇게 벌을 서게 하니?”하고 투덜거렸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말을 하는 정수를 흘끔거리면서 선생님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하는 정수를 바라보고 빙긋이 웃으시면서 “그런 말을 하는 정수씨는 왜 숙제를 안 해 와서 이렇게 많은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이 되셨는고?”하고 정수에게 말씀을 하시자, 정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맙니다.

"자, 준비!“

선생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리들은 팔을 쭉 펴서 옆으로 들었습니다. 숙제를 안 하거나 잘못이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 선생님이 주신 벌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선생님의 시작 신호가 떨어지나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너희들 23명이나 되는데 내가 너희들을 다섯 대씩만 때리려고 하여도 95대나 되는데, 내가 왜 팔 아프게 너희들을 때리니, 그리고 너희들도 아무리 잘못은 했지만 선생님에게 맞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 아니니? 그러니까 각자 스스로 자기 반성을 합니다. 자, 시~작.”

선생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리들은 팔을 크게 들어 올려 머리 위에서 손뼉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두 소리를 맞춰 “하나, 둘, 셋.” “그쳐. 저기 영주가 꾀를 부리고 있어 다시 해야지? 자, 준비. 다시 시~작”

우리들은 일제히 다시 손뼉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열.”

우리가 열대를 마치고 손을 내리자, 선생님은 “손바닥이 화끈거리지? 난 안 때렸다. 그지? 왜 난 안 때렸는데 손바닥이 아프다고 야단이지? 다음에 또 이렇게 안 해오고 손바닥을 못 살게 할거야?”

마치 우리를 약올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선생님은 말씀을 계속 하십니다.

“이렇게 하니까 여러 가지로 이익이라니까. 난 팔이 안 아파서 좋고, 또 한꺼번에 23명이 모두 끝나니까 시간 절약되어서 공부시간 손해 안 보고, 너희들은 선생님한테 얻어맞지 않았으니까 기분 나쁘지 않을 것이고 어떠니 그렇지?”

우리들은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다고 생각해서 “예”하고 우렁차게 대답을 했습니다.

“자, 그럼 됐다. 우리 공부해야지? 어제 숙제들을 안 해왔으니 이 부분을 다시 시작해야겠구만, 자 그럼 어제 숙제로 주었던 문제부터 시작하자. 숙제를 해온 사람이 먼저 발표를 해보자.”

우리는 이렇게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손바닥이 화끈거렸지만, 우리 선생님이 벌을 주신 것은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속으로 ‘우리 선생님은 참 괴짜 선생님이야’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호, 호”

손바닥을 불어서 식힌 다음 연필을 잡았는데 그렇게 아픈 것은 아닙니다. 방송에서 들으니까 어느 중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을 때렸다고 고발을 해서 경찰이 출동을 하기도 하고, 또 어느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을 너무 때려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선생님이 어떻게 입원을 할 만큼 때렸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가만히 우리 선생님의 벌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미워서 때리거나 벌을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도 많은 아이들이 숙제도 안 해 가지고 오면 얼마나 힘이 드시겠는가? 그리고 그 많은 아이들을 매를 때리기도 쉽지 않을 거야, 또 때리고 나면 기분이 좋을까 역시 별로 좋지 않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니 우리가 받은 벌은 참 좋은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몇 번씩이나 손뼉을 쳤지만 나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칠 때는 그까짓 거 했는데 실제로 내가 해보니까 여간 아픈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 벌은 참 별난 것입니다. 내가 나를 때리고도 정신이 버쩍 나게 만들어 주니까요. 난 ‘이 다음부턴 절대로 또 손뼉을 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하고 굳게 다짐을 해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골똘 하느라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던 나를 지명하신 선생님은 “김영화! 얼마지?”하시는 것을 듣고 얼른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었어서 나는 ‘아차 이번엔 내가 걸렸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선생님의 표정을 살펴봅니다. 선생님은 생글생글 웃으시면서 칠판의 중앙에 바짝 붙어서 계십니다.

‘저 등뒤에 아주 쉬운 문제(예를 들어서 2+3과 같은)가 씌어 있을 텐데......’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니까 장난꾸러기 경식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4개 펴 보였습니다. 답이 ‘4’라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잘 못 친구들이 가르쳐준 대로 말을 했다간 엉뚱한 답을 가르쳐 주어서 웃음거리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가끔 이렇게 공부시간에 딴 짓을 하는 사람을 혼내줍니다. 그것도 공부를 잘하거나 학급에서 아주 잘난 척 하는 사람일 때는 아이들이 짓궂게 엉터리 답을 가르쳐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이런 소리에 속아서 답을 말했다가는 학급아이들이 모두 웃음보따리를 쏟아놓는 창피를 당하기 쉽습니다.

어제는 학급 반장인 영준이가 손에 뭘 들고 만지작거리다가 선생님의 이 질문에 걸려 친구들이 가르쳐 준대로 ‘7’이라고 했다가 온통 웃음 바다가 되었고, 선생님은 학급에서 겨우 3,40점을 맞는 친구 철석이에게 물으셔서 정답을 맞추자 영준이에게 “그거 봐라. 공부시간에 딴 짓을 하니까 영준이는 이 시간부터 열심히 듣는 철석이에게 배워라, 못 들었으면 배워야지?”하자 아이들은 모두 힘차게 “예!”하고 소릴 쳐서 영준이가 엄청 자존심이 상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영준이를 다시 회복할 수 있게 어려운 문제를 주어 맞추게 하고서는 “역시 영준이야, 그런데 아깐 무슨 생각을 했었니? 이제 잘 들어야 해”하고 달래 주시는 걸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린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 즐거운 것입니다. 꾸중을 들어도 벌을 서도 모두 이것은 우리들을 위해서 속을 썩이시면서도 참고 가르치려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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