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여행 유감

2011.08.16 09:51:00

흑산도에 다녀왔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는 흑산도는 우리나라 가장 서남단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 섬과 함께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은 편이다. 그런데도 목포까지 내려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시 흑산도까지 배를 타는 일은 체력도 필요했다. 생전 안하던 멀미까지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처음 가는 길이라 기대가 크다.

아니나 다를까, 흑산도는 바람부터 단맛이 난다. 바다 냄새도 달랐다. 배에서 내리는데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섬은 온통 짙은 초록빛으로 뒤덮여 있어 검게 보이기도 한다.

흑산도에 들어서자 우리를 반긴 것은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다.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렸다는 애절한 가사가 애틋하게 들어온다. 가이드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관광버스에 타라고 성화다. 버스에 올랐더니 여기도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퍼진다. 급기야 일행 중에 한 사람이 뒤쪽에서 "기사 아저씨 노래 좀 꺼 주세요"라며 짜증 섞인 부탁을 했다.

관광버스에서 흑산도 여행을 시작한다. 가까이 있는 홍도는 섬 밖에서 배를 타고 도는 관광을 한다. 흑산도는 일주 도로를 따라 섬 안에서 풍경을 즐긴다. 섬 안의 속살까지 돌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아슬아슬한 급경사면을 따라 이어진 해안도로 주변으로 절경이 펼쳐진다. 기사 아저씨는 육지에서 온 손님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몬다.

기사 아저씨는 바위를 보며 무슨 모양처럼 생겼냐고 묻지만 그냥 바위처럼 보인다. 촛대 같다고 해서 촛대바위로 부른다는 말에 비로소 촛대처럼 느껴질 뿐이다. 오염되지 않은 산 중턱에 가거도 패총(貝塚), 지석묘군(支石墓群) 등 문화재까지 보인다.

흑산도는 망망대해에 있는 섬이라 예부터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산자락에 낮게 않자 있는 손암 정약전의 초가가 보인다. 손암이 개설한 이곳 최초의 서당이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인 정약전은 신유박해로 이곳에 유배되어 약 15년 동안 머물렀다. 그러면서 근해에 있는 물고기와 해산물 등을 채집하여 기록한 ‘자산어보’를 남겼다.

면암 최익현 선생도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선생의 친필 "基封江山 洪武日月"(기봉강산 홍무일월)의 8字는 선생이 유배 생활을 했던 흑산면 천촌리에 있는 손바닥바위에 새겨져 있다. 선생의 휴허비(勉庵崔先生遺墟碑)는 문하생인 오준선, 임동선 등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이런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차를 타고 지나쳤을 뿐이다. 우리가 가까이 본 것은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다. 속리산의 말티고개 보다 더 굴곡이 심하다는 고갯길을 감돌아 오르니 노래비가 버티고 있다. 바다를 보라고 내려준다. 바다는 말이 없다. 주변 경치도 신비롭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도 우리를 반기고 있다.




순간 아쉬움이 솟는다. 새 소리와 벌레 소리 멀리 파도 소리도 듣고 싶었다. 기계음으로 나오는 노랫소리보다 자연의 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무와 꽃은 바다 저 멀리서 오는 바람을 만나 몸을 흔드는데 그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슬로시티도 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 걸으면서 이것저것 눈으로 보고 듣는 여행이 마음을 움직인다.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일상에 묻혔던 나를 돌아보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차를 타고 멀리서 지나치는 여행은 고행이다. 실제로 나는 차를 타고, 배를 타면서 멀미까지 했다. 일행 중에 여자는 다시 흑산도의 일주 버스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면서 심한 멀미와 사투를 하고 있다.

둘레길이니 올레길이 인기를 얻고 있다. 천천히 걷는 것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탈것에 얽매여 바쁘게 살아가면 놓치는 것이 많다. 걸으면 주변에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내 힘으로 세계를 느낀다. 걷는 여행에 건강이 있고, 함께 나누는 정도 있다. 섬 풍광과 기운을 직접 느껴보는 여행 상품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혼자 생각해 본다.

하나 더, 섬 주민들은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를 자주 입에 올린다. 이 노래가 흑산도를 알렸다는 판단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런데 흑산도에는 흑산도타령을 비롯해 여러 무형문화재가 존재한다. 뱃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와 춤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이러한 문화재 소개를 위한 관광 상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흑산도와 관련된 소설도 있다. 전광용 교수의 단편소설 ‘흑산도’이다. 섬사람들이 서럽고 외로운 섬에서 뭍을 향한 한 맺힌 삶을 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양평군은 ‘황순원의 문학촌 소나기 마을’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황순원의 고향은 이북이다. 소설에서 소녀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내용만으로 문학촌을 건설했다. 그리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고, 양평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하물며 소설 ‘흑산도’는 흑산도 섬과 직접 관련이 있다. 지방자치 단체에서 노력을 기울이면 흑산도의 새로운 상징이 될 수 있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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